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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an 26. 2024

머루알 같은 엄마의 눈동자

엄마, 그리움

  추석이 되기 전 아버지는 벌초를 아주 많이 하셨었다. 그때마다 지게에 머루가 주렁주렁 열린 머루 나뭇가지를 가득 베어오셨다. 오시면 마당에 지게에 담긴 머루를 부어놓으셨다. 그러면 우리는 달려가서 검게 잘 익은 머루를 입이 검붉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한 움큼씩 따서 먹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잊지 않고 매번 따오셨다.


오늘은 엄마 병원에 면회를 갔다. 온몸이 갈수록 쇄진 해지셔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얼굴 손 발을 따뜻한 물로 씻어드리고 마비된 우측뿐만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시니까 가능한 모든 곳을 안마해드리거나 움직임을 대신해 드리고 약을 바르거나 손톱을 깎아드리고 콧줄로 음식을 섭취하시니까 동생은 음료를 준비해 와서 그곳으로 넣어드리기도 하고 혀 식도 할 것 없이 우측이 마비상태라 과즙이나 된장국 등을 적셔서 맛보시게 한다. 거의 준 전문가인 동생이 준비하고 많은 걸 동생이 한다. 손발을 씻어드린다거나 안마를 해드리는 단순한 것만 내 몫이다.


면회실로 동생은 먼저 와서 노련하게 엄마를 케어하고 있었다. 뇌경색 이전에 엄마와 내가 통화를 했던 게 우연히 녹음이 되어 있었던 게 있어서 엄마가 쓰러지신 후 우연히 발견하여 자매단톡에 음성파일을 올렸었던걸 틀어놓고 정성을 다해 엄마를 케어하고 있었다.


뭔가를 사드리면 "고맙다." 또는 "잘 쓸게" 뭐 이런 긍정적인 답을 하신 적이 없었다. "뭐 하러 이런 걸 사 왔느냐." 등등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부정적인 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마에게 신발을 사드리기 전에 통화를 했었다. 무턱대고 사서 드리면 또 안 신는다고 하시거나 반품하라고 하시거나 결국은 제대로 신지 못하게 되니 마음먹고 통화를 한 거였었다. 통화만으로도 사가지고 가져갈 때처럼 사 오지 말라는 말씀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면서 엄청나게 길게 말씀을 하셨었다. 엄마의 의중은 정말 무언지 알 수가 없다. 좋으시든 그렇지 않으시든 항상 부정적인 대답이셨으니까 딸 넷 모두 엄마의 마음을 읽지 못해 난감해했었다.


통화 후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받은 메이커 신발을 사다 드렸음에도 그냥 관상용으로 두고 신지를 않으셨다. 한참을 지나서 다시 찾아뵈었는데 무슨 부탁이라도 하듯이 "저 신발 네가 신으면 안 되겠니?"라고 하셨다. 옆에 있는 동생이 "엄마는 신발이 발등을 덮여서 답답하시나 봐."라고 했다. 결국 그 신발은 내가 맛나게 신었었다.


그런 사연을 담은 통화를 했었던 게 전화기 녹음버튼이 볼에 눌렸었던지 모르는 사이에 녹음이 되어 있었다. 그 녹음파일이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가 되었다. 좌뇌가 경색이 되어 우측이 마비되고 언어중추가 마비되어 말씀을 못하시게 된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녹음이 되어 면회 때마다 녹음파일을 들려드리게 된 것이다. 뜻하지 않게 말씀을 못하시는 당신께 '당신의 목소리는 이러하였습니다.'라고 일깨워드리기 위함으로 또는 '어서 빨리 말씀을 하셔요 이렇게 하시면 돼요.' 하는 마음으로 들려드리고 또 들려드린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주치의가 그랬었다. "의식은 명료하십니다."라고. 의식은 명료하시다. 눈으로 입 대신 모든 말씀을 소리 없이하신다. 오늘도 내 모습을 보고 눈으로 반가워하셨다. 체구는 반쪽이 되셔서 가엽기가 이를 데 없는데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는 여느 때보다 진하게 깊은 마음을 보여주신다. 엄마의 머루 같은 까만 눈동자를 보고 돌아가신 지 사십 년이 가까워진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마당 위에 우수수 떨어지던 까만 머루가 생각나면서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 단란했던 시간들이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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