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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01. 2024

정답 같은 추측

칭찬, 부모, 자식

  누군가는 목숨 걸고 달나라를 탐험한다. 와중에 나는 나를 탐험 중이다. 혈액형이 더 객관화된 성격 유형 판별 방법으로 믿고 있는 나는 MBTI가 ENFJ다. 큰아이가 판단의 조정자 역할을 했을 땐 F가 아니라 T였었다. 또 다른 성격 판별법으로는 여우과가 아닌 곰과다. 그런 나는 칭찬에 유난히 갈증을 느끼고 칭찬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라 스스로 그 이유를 찾고 싶어 했다.


긴 시간 궁리 끝에 아마도 성장기의 어떤 결핍이 이유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다. 오늘 새벽부터 아침까지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었다. 세시간여를 대화 끝에 대화의 내용과 별개인 나만의 궁금증의 정답을 찾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했으니 아마도 추측에 그치겠지만 나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을 찾았다.


어린 시절 두 살 위인 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었다. 언니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언니와 나는 많이 달랐다. 행동면에서는 언니는 많이 빠르고 나는 보통사람들 보다 느린 편이었다. 언니는 날렵했고 나는 체격은 보통이었지만 느린행동으로만 봐도 곰 같았다. 행동과 성격이 같이 갔다고 보면 맞다. 성격도 언니는 날이 서있었고 나는 유하다 못해 둔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언니는 동네에서 함께 지냈던 또래들 중에서는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큼 동생인 나의 시선에서는 빼어났었다. 총명했으며 뭐를 해도 잘했다. 뿐만 아니라 외모도 어른들이 쓰는 말로 귄(매력)이 철철 넘쳤다. 지금도 솜씨가 빼어나지만 어릴 적부터 음식을 아주 잘 만들었다. 그런 언니를 아버지는 남달리 예뻐했으며 매번 칭찬을 하셨다. 아버지 못지않게 동생인 나는 언니를 좋아했고 자랑스러워했었다.


부모님이 출타 중이시면 언니는 주로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었고 난 청소며 궂은일을 맡아했었다. 동네 초입에 있는 학교를 함께 다니는데 언니는 자주 집에 놓고 온 숙제며 준비물들을 매번 내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었다. 그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그 심부름을 도맡아 했었다.


둘이서 함께 가던 등굣길에서 동네를 관통하는 개울물에 내가 풍덩 빠져서 온몸이 젖었었다. 아련하게 빠졌었다는 기억만 갖고 있는데 오십을 넘긴 언니는 내게 그때 본인이 나를 일부러 밀어서 빠뜨렸었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아서 다시 묻곤 했었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서 언니가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언니는 이어서 믿기지 않은 말을 또 했다. 본인은 부모님으로부터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뭘 그러냐고 아버지는 서커스단 공연에 매번 언니만 데리고 다녔었고 거의 매일 칭찬을 했었지 않았냐고 얼마나 언니를 예뻐하고 사랑했었는데 무슨 말이냐고 때아닌 설득을 시키고 또 이해를 시키려고 애썼었다.


아버지는 본인에게 매번 칭찬을 하셨었다고 그런데 부모님은 공부 잘한 너를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모든 면에서 언니는 탁월했다. 나는 딱 하나, 공부를 언니보다 조금 더 잘했었다. 그게 언니는 많이 부러웠었나 보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 질투가 나서 개울에 나를 밀었었다고 실토를 하는 언니를 보면서 의외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또한 흠뻑 젖을 만큼의 사랑을 받고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이었을 주먹만 한 왕사탕 하나를 사주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가슴 따뜻한 기분으로 평생을 살고 있는 나는 또 왜 그런가 싶어 진다. 물론 자타공인 엄마의 소리 없는 은은하고 깊은 사랑은 나의 뿌리가 되어주었다. 사랑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한 언니가 아버지께 매일 칭찬을 받은 걸 부러워하며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는 언니에게 칭찬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알게 모르게 어린 나는 많이 부러웠었나 보구나,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면 그걸 평생을 품고 행복해하며 그걸 에너지 삼아 살아낸다. 그런 내가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했었다. 오늘에야 답을 찾았다.


장성한 자식을 키워낸 언니는 부모님께 넘치도록 사랑을 받고도 아직도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았다고 하고, 동생은 칭찬에 정신을 못 차리는 자신이 왜 그럴까 답을 찾으려고 한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냈으면서도 자신의 부모 앞에서는 마냥 그저 어린 자식으로만 머무르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 되는 것 쉽지 않다. 부모 되기 어렵기도 하지만 균형 잡힌 부모의 역할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식들의 부모 된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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