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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17. 2024

부모

부모, 자식

  삼십 년 전쯤 미장원에서 만난 노인이 생각난다. 그분은 당신이 가장 행복했을 때가 자식들 도시락을 하루에 네다섯 개씩 싸주던 때였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자식들은 모두 학교 급식을 하던 시절이라 그런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학비며 생활비를 보내줄 때마다 '아,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보내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을 갖는다.


유난히 무언가를 받으면 갚아야 된다는 생각이 고착화되어 있는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작은 거라도 받으면 갚기 전까지 무척 마음이 무겁다. 그런 사람이라 정년을 하고 소득이 없을 때라도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부모이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 이후가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걱정이 된다.


솔직한 마음은 어떻게든 자식들의 도움으로 살기는 싫다. 모두 자리를 잡고 본인들의 마음의 표시를 한다한들 그냥 주 생활은 우리 부부의 힘으로 엮어갈 수 있길 바란다. 무모한 건지 무식한 건지 곧 다가올 정년 앞에서 지금까지도 아무 대책이 없다. 항상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가 더 먼저 고민이고 걱정인 게 우리 부부가 꼭 닮았다. 무대책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줄까를 매번 생각하고 방법을 찾으려 한다. 제삼자가 보면 갑갑해할지언정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스스로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언 이십여 년 전에 우리 엄마가 하신 "자식빚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씀이 있다. 딸만 넷인 우리 집은 가장인 우리 아버지께서는 종손인데 장남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미래 준비가 없으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착하고 성실하고 부지런까지 하셨지만 미래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분골쇄신 가족을 위해 진하게 고생하셨고 큰언니 또한 우리 가정 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자식들에게 받은 경제적 도움을 많이 무겁게 느끼셨고 힘들어하셨다.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많은 고생을 하시고도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늘 미안해하셨으며 진지한 말씀을 늘 피하시던 분이 속으로 삼키듯이 "세상에서 자식빚이 제일 무섭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직은 자식들에게 어떤 경제적 도움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입장이지만 훗날 자식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다면 그 마음이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 걸 힘들어할게 불 보듯 훤한데도 아직도 아이들에게 무얼 어떻게 해서 도움이 될까만 생각하는 게 참 용감하다.


부모가 늙고 자식들이 장성하여 생활인으로서 많이 분주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부모가 쌓아 놓은 경제력이 마치 당연히 자식들의 것인 양 부모 마음대로 쓰는 걸 본인들이 맞다 틀리다를 하곤 한다. 부모는 부모다. 자식은 그냥 자식이면 된다. 모든 부모는 적어도 본인들 자식 앞에서는 부모인 것이다. 부모의 결정을 무조건 존중해야 비로소 자식이다.


부모로서 나름 자식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왔다고 자부한다. 이미 다 성인이 되었고 그 어떤 도움을 주지 않아도 본인들의 삶을 잘 이끌어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세상 부모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그 역할을 할지언정 상대적인 부모의 역할로서 보다 그냥 우리 자식들의 부모로서 우리 부부는 소신껏 당당하게 부모 역할을 해나갈 생각이다.


센척하는 중이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맞네 틀리네 하지 말 것이며 끝까지 부모로서 부모 마음대로 하는 걸 존중해 주라는 주문을 하는 중이다. 나약하기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우면서 겉만 센척하는 엄마는 자식 셋 낳기 전에 사주팔자에 자식복이 있다는 말 한마디 듣고 마치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것처럼 살아왔다. 실제로 낳아 기르면서 내게 넘치는 훌륭한 자식들이라 자식복이 많다는 생각으로 감사해하면서 살았다.  


부모는 어느 부모나 능력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게 부모다. 인생을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 했냐고 묻는다면 원껏 줄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더 많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여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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