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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16. 2021

때늦은 방황

인생

  세월 속에 많은 것들이 점점 빛을 발해 간다. 주변의 사물들이 빛을 잃어가는 건 그것들이 무생물이라 그러나 보다 그렇게 싸잡아서 쉽게 판단한다고 하자 그러면 살아 숨 쉬는 나는 어떤가? 스스로 노화를 자각할 정도니 실제로는 얼마나 더 늙었겠는가? 거울을 보면서 느끼는 노화가 문제가 아니다 신체의 기능이 하나하나 퇴화되어가는 게 더 문제다. 백세시대에 이제 절반이 갓 넘었는데 이런 표현은 좀 과한지 모르겠지만 인생무상, 반짝 태양이 작렬하는가 싶더니  귀뚜라미 우는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딱 지금의 절기가 내 인생 주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곡식들이 가을 햇볕에 알찬 열매로 익어가듯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성숙하게 보람된 인생이 되도록 나도 익어가야 할 가을이다.


  달리고 달려온 지금의 내 모습은 빈 쭉정이 같다. 노화로 더더욱 쭉정이란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더 큰 문제는 영혼마저 텅 빈 깡통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더 문제다. 그런 내 모습이 슬프다거나 애처롭게 느껴지기보다 새롭게 생기를 찾을 에너지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내 모습이 더 안타깝다. 생명을 부여받아서 그 생명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새로운 생명을 세명씩이나 낳아 길렀으니 큰일을 했다. 지금은 그들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그들을 놔줘야 할 때라 제대로 놓아주느라 느껴야 하는 허전함이 등대 잃은 선박처럼 망망대해를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내리막길을 걷기에는 빠르다고 생각한다. 오르막길의 끝에서 만난 넓은 고원을 오래오래 걷다가 팔십쯤 되어 천천히 내리막길을 걷고 싶다. 지금은 넓은 고원을 잔잔한 잔디와 아름드리나무가 자리를 잡아 누구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들로 만들고 싶다. 그런 공간이 되는 내가 되고 싶다.


  지금은 보람된 일을 해야 할 시기다. 방황 하기엔 내가 너무 오래된 사람이다. 십 대도 이십 대도 아닌 내가 방황이라니? 가열차게 해야 할 일을 찾든지 보람이란 수확을 얻을만한 일을 찾아 살아야 할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 지금이다. 특별한 목표가 없는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달리고 달리다가 허허벌판에서 갑자기 내린 기분이 이럴까? 방황의 시기인지 휴식의 시간인지 구분이 안된다. 일 중독처럼 맹렬히 뛰던 내가 더 이상 뛰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뛰던 버릇 때문에 또 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잔디밭을 걷다가 아름드리나무를 만나 그 그늘에 쉬어도 보고 추억도 되내어보며 은은한 인생의 맛도 음미하며 사는 여유를 갖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마라톤 이라고 끊임없이 맹렬히 뛰어야만 하는 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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