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Aug 22. 2021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새벽 두 시, 귀뚜라미 소리가 잠을 깨웠는지 그냥 잠이 깨서 귀뚜라미 소리가 크게 들리는지 고즈넉한 이 새벽에 귀뚜라미 소리가 귓속에서 파도를 치며 머리까지 점령한다. 아무런 소리 없이 가을향이 나는 촉촉한 공기 속에 풍덩 잠기고 싶다. 그들에게 텔레파시라도 보낼 수 있다면 귀뚜라미가 소리를 은은하게 내어주길 바본다. 얼마 전까지는 매미가 한여름의 땡볕의 강도와 경쟁이라도 하듯 목청껏 울어대더니 금세 귀뚜라미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날밤을 새워가며 계절이 바뀌었다고 그들은 강하게 주장하고 있나 보다.


  만물이 본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분주하다. 모두가 무리를 지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인간은 본시 혼자다.' 이렇게 세뇌시키고 있다. '주변에 기대를 말자.' 이렇게 내게 타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뭘 또 얼마나 다쳤기에 스스로에게 과외공부 시키듯 시시때때로 세뇌를 시키고 그러는지?!, 살다가 여백이 생기면 그냥 쉬게 두지 왜 자꾸 스스로를 괴롭히는지? 불필요하게 예민한 건지 아니면 성자가 되기 위해 마음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순수한 눈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포근하게 누군가를 마주하고 싶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혈액이 잘 순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가 원활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이 원활하게 순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혈액이나 돈처럼 인간이 정서적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중요한 정이 세월이 흘러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갈 때 세월과 함께 더욱 곰삭듯이 깊이 익어가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뭘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오만 정을 떼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정이 깊어지면 이별이 두려워서일까? 하루를 살더라도 진하게 정을 나누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가까울수록 서운한 행동을 하면 그 파장이 상처가 된다. 그런데 그분들은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 혼자 그분들을 언덕처럼 기대고 의지하면서 살았다. 힘들고 괴로울 땐 그분들이 날 믿고 의지한다고 느꼈기에 힘을 내서 스스로를 추스르면서 다시 바르게 일어서곤 했었다. 언젠가 말했듯이 내 기쁨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듯이 그분들은 내 기쁨을 나보다 더 기뻐한다고 느끼면서 함께 기뻐하며 살았다. 그렇게 알고 쭉 살았으면 좋았을 걸 왜 내게 그분들이 갖고 있는 다른 모습을 들키는지? 난 또 왜 그런 모습을 보고야 말았는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도, 먼 산 바라보며 멍을 때려봐도 가시지 않는 이 허전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그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건너지 말았어야 할 강을 건너버린 그분들을 위해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지하 어느 곳에 깊은 뿌리처럼 그분들이 심어 둔 정이 있을까? 난 또 그 정을 찾아 헤매야 하나? 헤매다가 지쳐서 스스로에게 인생은 애초부터 혼자라고 기대를 말라고 애초에 혼자인 것을 인정하라고 울부짖어야 하나?! 되찾고 싶다, 그들과 함께 나눈 깊은 정을.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이런 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