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young long
Aug 23. 2021
초등학교 졸업식 날 선배로부터 졸업 선물을 받았었다. 중학생인 선배는 시집 한 권을 예쁘게 포장해서 내게 주었다. 그때는 대부분 졸업 선물이 꽃다발 아니면 일기장, 앨범 그리고 만년필 등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뜻밖의 시집을 받아서 그때 기분으로는 한껏 성숙한 것 같은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시집이 롱펠로우 시집이었다. 들뜬 기분을 누르면서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 시집에 있는 "인생 찬가"는 무신론자인 내겐 성경의 한 구절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언뜻언뜻 되살아나서 내가 살아가는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곤 했다. 요즘 무슨 까닭인지 "만물은 겉보기와는 다른 것." 이란 그 시의 한 구절이 내 귓속에 맴돈다.
나란 사람은 참 그렇다. 어떨 땐 애늙은이 같다가도 또 어떨 땐 헛똑똑이란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어쩌다 다행히 오십이 넘도록 안전 운행해 왔지만 자칫 맘먹고 덤비면 완전 거덜내기 딱 좋은 사람이다. 원래 나란 사람이 정말 그런 사람인가 싶다가도 몇 년 전 겪은 일을 생각하면 내가 나를 못 믿겠다. 뭐 그렇다고 사기를 당했다거나 특별한 물리적인 손실을 입은 건 아니다. 삼일 만에 사 킬로그램의 체중이 감소하는 맘고생을 진하게 했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업무는 같은데 몇 년마다 인사이동하는 직장이라 몇 년 전에 이곳엘 왔었다. 업무와 관련 있는 직장 상사의 첫인상은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적으로 관리를 하는 인력들 중 유달리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천사 같다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내고 이 년째 되던 해에 그들 중 유난히 천사 같다던 이는 악마가 되었다.
그런데 인상 좋다는 상사는 천사의 탈을 벗은 이들을 선동하여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그들의 대변인 인양 행동했었다. 내가 업무 전반을 바로잡으면 최대 수혜자는 본인인데 어리석게도 그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다니?! 말로 다 할 수 없이 안하무인에 요즘 같은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밥 먹듯 하더니 최근에 전근을 가게 되었다고 내 부서를 찾아와서 "많이 반성했다. 업무 하다가 생각이 서로 달라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많이 반성했다, 미안하다." 이러면 진짜 반성한 게 될 텐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다.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오래된 건물을 다시 신축하고 겨우 꼭 해야만 하는 일들만 하고 체계적으로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내가 간 해에는 신축건물에서 정상 운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매뉴얼대로 바로잡기 시작했다. 그 전엔 얼렁뚱땅 넘어가던 것들을 바로잡으면서 불편함과 있을 수 있는 이득을 못 갖게 되니까 천사의 탈을 벗고 없는 일을 만들어서 까지 나를 곤궁에 빠트린 것이다. 그 상사라는 사람과 손발을 맞춰가면서. 그에 반해서 관련부서의 부서장은 내게 "일을 제대로 하시니까 생기는 일이다. 수고하신 지 안다." 이렇게 격려해주셨다.
뒤늦게 나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불신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놈의 세상, 어떻게 살란 말인가? 본인의 이권 앞에선 인면수심인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고 나니 의심 없이 있는 그대로 봐지질 않는 부작용이 생겼다. 오지랖 넓게 그들에게 순수하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던 일체의 행동도 안 하게 되었다. 백가지 도움이 된 일은 기억하지 않는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아스라 백작의 악한 모습을 주저 없이 내비친다. 그럼에도 나는 내 할 일을 할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생명체도 내 가까운 주위에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당당히 내 갈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