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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24. 2021

내 남편

내 남편

  난 언젠가는 내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왜, 갑자기 안 어울리게 고맙다니?" 그럴 것만 같아서 미루고 있는 중이다. 언젠간 이 글을 볼 수도 있으니까 하던 말을 마저 해야겠다. "보잘것없는 나를 200% 마음에 들어서 결혼까지 하고 지금까지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줘서 고맙습니다." 서로 파뿌리에 가까워진 머리카락을 갖고도 내게 버팀목이 되어준 내 남편 고맙고 앞으로도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위하면서 살자는 말 하고 싶다.


  결혼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생각은 아직도 같은 생각이다. 그 운명적인 결혼은 맞선을 통해 시작해서 편지라는 통신 수단을 통해 서로 적당히 미화되어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미화의 속도가 특히 내쪽에서 많이 속도를 내서 성사되는데 일조를 했지 않았나 싶다. 내가 더 사랑했다는 말하고는 다른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도 남는 지극히 이성적인 지금의 상태에서 말하자면 남녀가 교재를 하면 갖는 가장 상식적인 생각을 나는 했었고  이를테면 '늘 나를 생각하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미뤄 짐작하면서 진도가 물 흐르듯이 나간 것이라는 얘기다. 나의 상식적인 상상이 빚은 피조물이 우리 둘을 결혼에 이르게 한 것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거나 가까운 거리여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더라면 나의 예리한 관찰력이 결혼까지는 허락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그냥 '결혼은 운명이다.'라고 간결하게 정리 하자.


  서두에 고맙다는 둥, 그런 표현을 하니까 자칫 지금도 깨를 볶는 잉꼬부부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말 그대로 오해다. 결혼 후 남녀 간의 사랑의 유효기간은 대략 삼 년쯤으로 생각된다. 내 남편 생각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거리를 다닐 때 손을 잡고 다녔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에 대한 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남편은 오 년쯤은 되었던 걸로 거슬러서 시간을 더듬어서 추정해 본다. 그건 뭐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아이들 육아에서부터 본가의 부모님을 향한 신앙처럼 받드는 효행 등으로 소리가 나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 '내 이름 석자의 반대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내 남편 이름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를 정도로 심심하지 않게 살았다. 그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 큰 지금은 너무나 조용해서 심심하기까지 하다.


  내 남편의 문제점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게만 참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나를 본인과 동일시하는 게 더 문제다. 왜냐하면 본인에게 인색한데 가만 보면 내게도 본인에게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내가 웃으게 소리로 하는 말 중에 "당신은 참 복도 많아, 나 같은 사람이 부인인 걸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웃으게 소리처럼 하지만 어쩌면 진심인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데 유일하게 나한테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숨 쉴 곳이 되어 준 내가 있어서 내 남편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지 모른다. 괘변처럼 들려도 그의 유일한 숨 쉴 곳이 난 건 사실이다.


  언젠가 언급했지만 내 남편은 국가대표 효자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겐 우리 아이들 셋 앞에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좋겠다. 너희 아빠처럼 좋은 분이 너희 아빠여서."라고 말했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상사 일 것이다. 편하게 대해주니까 서로 같이 근무하려고 한다는 얘길 들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사는지 모른다. 내 남편은 부모님과 자식들에게 하는 걸 보면 딱 칠십 년대 어머니 상이다. 내가 결혼해서 지금까지 보아온 로는 진짜 아들인 내 남편이 본가의 부모님들의 어머니 같았다.


  그럼 나는 왜 그런 대우를 받고 사느냐고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 단순하다. 십 년에 한두 번 감동적인 칭찬을 해주면 그 걸 식량 삼아 산다. 남자들은 시각적인 동물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스스로의 미모가 평균에 못 미치는데 이사 다닐 때마다 그 지역에서 제일 잘 생겼다는 것이다. 누구 제삼자 앞에서 그 말을 하려고 하면 입을 막았었다. 가당치 않아서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실언을 흘린다. 그렇게 그 말로 십 년을 살았다. 이십 년은 어느 날 편지 겉 봉투에 나의 장점을 가득 쓰기 시작했다. 착하다. 성실하다. 추진력 있다. 결단력 있다. 등 등. 무심하게 써 내려간 나의 장점이란 것 그 걸로 이십 년을 살았다. 그다음은 내가 태어나서 필생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정성으로 키운 우리 아이 셋이 잘할 때마다 "너희 엄마 덕분이다." 이렇게 말해줘서 그걸로 삼십 년을 살아냈다.


  각자 너무나 달라서 요즘 떠도는 콩트 중에 "부부는 로또다. 잘 안 맞기 때문이란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부부는 다르다. 그 다름이 부부의 과제인 것 다. 어떻게 보면 신이 내 준 숙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다른 걸 서로 이해고 배려하고 때론 싸우면서 맞춰서 사는 게 과제인 것 같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한 사람과 다른 또 한 사람이 온갖 희로애락으로 엮어서 일생 동안 진정한 하나가 되어가는 공부를 하는 과정이 부부로 사는 삶인 것 같다. 결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필수품은 그 흔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어쩌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인내가 아닐까 한다. 혹시 결혼을 생각하는 분은 사랑, 믿음, 인내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책임감까지 장착해서 시작하길 바란다. 후훗, 앞서 가시는 분들에 비해 아직 반도 못 산 애송이가 풋내를 풍겼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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