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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25. 2021

인생 이모작

오십 이후의 삶을 위해

  사회적인 현상이 '노령화'라고 한다. 살면서 다들 경험했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변화되는 호칭의 낯섦, 인정하기 싫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서 또 새로운 호칭이 생기면 그 전의 호칭을 주장하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낯을 가리기 시작한 호칭은 '아가씨'였다. 세상에 나보고 한 게 맞나? 진짜 나한테 한 건가? 나보고 '아가씨'라고? 귀를 의심하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도 나보고 한 말이 맞았다. 그 후로 결혼하여 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외출을 하면 나보고 당연히 '아줌마'라고 하는 게 맞는데 뭐라고? 겨우 '아가씨'란 호칭을 수긍하기 시작했는데 '아줌마?'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도망갈 수가 없다. 얼마 전 나보다 한 살 어린 분이랑 나란히 있는데 유치원생이 내 옆에 있는 그분에게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분은 화들짝 놀라면서 언짢아했다. 속으로 '나한테 할머니라고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소심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다. '노령화' 그 노령화라는 '노'자에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았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예전보다 이십 년정도는 젊게 산다고들 한다. 여러 가지 영향이 있겠지만 충분한 영양섭취, 의료혜택 그리고 남다른 건강관리 등이 어우러져서 칠십 대가 오십 대 처럼 건강을 유지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신체적으로 젊어졌는데 그 변화에 맞춰서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데 나의 무지인지는 모르지만 주변에서 특별하게 변화된 생활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깝게 지내는 육십 대 여자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전직 교사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이 둘을 결혼까지 시키고 부부만 덩그란히 남았는데 매일의 생활이 상당히 무료해 보였다. 아무 희망도 목표도 없어 보이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였고 어쩌면 훗날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새로운 모판에 씨앗을 뿌려도 늦지 않을 나이다. 한 달을 주기로 하는 업무를 해서인지 한 달이 매번 반복되는 것 같다. 밥 벌어먹는 직업 말고, 심장이 뛰는 무언가를 준비할 때다. 그런데 아이 셋을 대학에 입학시키고부터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집중하고 싶은 것도 간절한 것도 없다.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고 앞날이 걱정이 된다. 어제 퇴근길에 우연히 가까이 지내는 두 살 연상의 지인을 만났다. 그분은 전업주부다. 시국이 이러지 않았을 때는 산악회 모임이니, 여러 모임으로 여행도 다니면서 활발하게 지내다가 요즘은 무료한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았다. 반갑게  "어디 가시는 중인가 봐요?" 그러자 "시간을 보내려고 인근 문화회관에서 인문학 강의를 한다기에 들으러 간다."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을 보내려고 라는 말이 귀에 밟혔다.


  각자의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시기이다. 본인의 자식을 키우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간절한 무언가의 일이 필요하다. 각자 본인들의 모든 걸 바쳐서 이세를 기른 후 허탈한 상황에서 이제 진정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나를 비롯해서 또래의 많은 분들이 그 일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분명히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SOS를 보낼 수도 없고, 결국은 스스로 심장이 다시 힘차게 활력을 찾을 그 무언가를 찾게 되겠지만 그때가 언제일지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나는 그나마 작게라도 직장을 다니지만 그나마도 아닌 오십을 넘긴 많은 분들은 얼마나 황망할까? 인생 이모작을 시작 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아이들을 기르면서 "넌, 사춘기냐?, 난, 갱년기다." 목청껏 소리 질러가면서 가열차게 살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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