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여자는 결혼을 하면 명절이 싫어진다. 여자 중에 결혼을 해서 명절이 좋은 여자가 있을까? 결혼을 하기 전엔 명절을 기다렸다. 십 대 때는 명절이면 새 옷을 사주셨다. 진수성찬의 명절음식을 먹었었고 작은집 식구들이 모두 큰집인 우리 집엘 와서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방문을 열고 새배를 받으신 어르신들께 나이순으로 절을 했었다. 새배가 끝나면 세뱃돈을 받고 식사를 하고 성묘를 갔었다. 이십 대 땐 타향살이하다가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갔었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곤 했었다.
결혼을 한 후론 끊임없이 낯선 부엌에서 일을 했었다. 동서가 생기기 전 십 년을 넘게 대식구의 식사를 온전히 나 홀로 감당했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었나 싶다. 생선 굽는 것 빼고 모든 음식을 나 홀로 다 준비했었고 설거지도 나 홀로 집 청소도 나 홀로만 했었다. 시부모님은 물론이고 남편 그리고 시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안 했었다. 그때는 당연히 내가 다 해야 되는 걸로 알았었고 부족함이 없이 하기 위해 종종거리며 부지럼을 부렸었다.
결혼하는 나를 엄마와 언니들은 많이 걱정하셨었다. 워낙 엄마 그리고 언니들이 음식을 잘하셔서 나까지 음식을 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밥이나 할 수 있을까를 진심으로 걱정했었다. 그런 내가 첫 명절부터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미리 생선을 엄청 사가지고 남편에게 손질을 해달라고 해서 소금 간을 해서 꼬들하게 말려서 챙기고 시장에서 명절 동안 먹을 음식 재료들을 전부 준비해서 시댁을 가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명절 음식을 전부 만들어서 차례상은 물론이고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졌었다. 십 년을 넘게 홀로 해냈었다.
십 년이 넘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해냈었다. 잘 해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면서 했었다. 그땐 젊었는데도 명절을 끝내고 말미에 친정엘 가면 앉아있을 수도 없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싸우고 돌아온 병사도 아닌데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거들어 준 이도 없었고 차마 도와달라고도 못했었다. 그 모든 일을 나 홀로 해내야 되는 줄만 알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밥이나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내가 머슴처럼 묵묵히 해냈었다. 음식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방마다 자고 난 이불 정리며 청소까지 내가 다 했었다. 딱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도 힘들다 소리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걸 다 해냈었다.
몸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겹게 일을 하고도 오락부장 노릇까지 자청하여 명절에 할법한 놀이를 주도하고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가 따로 없었다. 그 후로 동서가 연이어서 두 명이나 생겼다. 그런데 그 동서들은 사뭇 달랐다. 제일 늦게 일어나질 않나 이유를 들어가며 명절에 오지도 않을 때도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속으로 놀라워하고 있다. 지난 명절엔 두 동서가 모두 안 왔다. 그래서 결혼 삼십 년이 넘고 다시 새댁처럼 일을 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함께 도와줬지만 참 많이 다른 풍경에 사뭇 놀라고 있는 중이다. 명절에 시댁을 안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꿈에도 못해본 내가 바본가 싶으면서도 막상 안 가는 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이미 시댁에 있을 시간에 안 가고 내일 아침에 갈 수 있는 것만도 호사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숙명처럼 해내는 게 있다. 힘들면 피할 수 있는데 피할 생각조차 못하는 난 왜 그럴까 싶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는 동서들을 보면서 그건 아니다 싶어지는 건 또 뭘까? 엄두조차 내지 못하면서 그들이라도 해방되어야 된다는 생각까지는 못하겠다. 시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라도 명절을 함께 지내는 게 맞는 것 같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럼에도 해야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꼰대처럼 그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삼십 년을 넘고 마음이 유연해져서 심하게 잘하려고 하지 않는 지금은 할만하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다양한 명절 풍경들이 있지만 언젠가는 남녀가 결혼을 하면 친정부터 먼저 가서 남자가 음식 장만을 다 하고 친정에서 명절을 지내고 시댁엘 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결혼한 여자도 명절이 기다려지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선 설 명절엔 시댁을 먼저 가서 명절을 지내고 친정엘 간다면, 추석엔 친정부터 먼저 다녀서 시댁을 가는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고려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