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슬픈 일이다.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되는 삶이 그게 그러니까 그래도 산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이 맞다. 타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당장 내가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말하곤 해버렸다. 우와~, 자발적 거지근성도 아니고 뭘 그렇게 까지 비약하면서 스스로를 슬프게 만들면서 살아야 하는지 참 어디서부터 스스로를 정비해야 될지 답답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데 순응해야지 뭘 또 정비를 한다는 건지.....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하기 시작했다. 석양의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일 때, 물들어가는 노을빛을 우둑커니 바라보며 내 몸에 별 특별한 현상이 없었는데도 짐이 되지 않겠다는 노래를 읊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님을 최근에 뵈었는데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자 갑자기 아기처럼 엉엉 울기 시작하셨다. 당신의 처지가 참담하셔서 그러려니 짐작은 하지만 당사자는 어떤 마음일지는 그 마음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은 물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제대로 의미 있게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가능하면, 되도록이면 '누군가'의 수가 많을수록 더 보람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십 대, 사십 대를 살아내면서 스스로에게 "너, 잘살고 있니?"라고 묻곤 했다. 워낙 정신없이 살아서 그런 질문도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게 묻곤 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응원하듯이 "그래, 잘살고 있다.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잘 기르면 넌 성공한 인생이야."라고 답하곤 했다.
전후좌우를 살피려고도 생각하는 오십 대가 되어서는 온전히 제대로 일대일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를 만났구나, 반갑다.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달리는 경주마도 아니고 어디를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려고 했던지 온통 정신이 없다가 식구들이 각자의 삶의 터로 흩어져 덩그러니 나 홀로 남게 되자 공허하다고 몇 해를 노래 부르다가 '오호라, 좋구나. 오십 대가 길었으면 좋겠구나.' 은근슬쩍 적응을 해버렸다.
원튼 원치 않든 앞자리가 바뀔 시점이 다가오자 그때부터 구슬프게도 자발적으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자.'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시간의 체감 속도가 '나이'라더니 신체가 그 속도를 자동으로 체감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내가 안쓰럽고 슬프다. 그런 나를 뜯어말리고 싶다. 그러지 말라고. 무슨 짐은 짐이냐고 그 '짐'이라는 단어를 쉽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나를 설득하려 든다.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짐'이 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건 다름 아닌 누군가가 내게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각자 성인이 되어서 누구의 말도 굳이 듣고 싶지 않기 시작하자 수요 없는 공급을 스스로 포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재의 이유, 스스로에 대한 가치 등,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게 되고 힘인지 짐인지 인식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던 때가 그 얼마나 소중한 시간 들이었나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묘한 과잉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늙어보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걸 깨달아 버리는 기회가 된다. '결혼' 그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혼한 당사자도 그리고 미혼자도 그 필요성에 대해 확답하기 힘든 건데 이제야 그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식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시기가 온다.
마지막까지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배우자 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텅 빈 깡통이 되어도 그 깡통을 옆에 두고 서로 기대게 되는 이가 배우자인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는 유일하게 배우자일 것 같다.
부모라는 두 글자는 영원토록 자식을 못 잊고 자식을 걱정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자식의 짐이 될 거라는 우려는 지금부터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는 시선을 나와 나의 배우자 중심으로 바꾸는 진정한 독립된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누구나가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으니까 건강관리 잘하고 멋있게 살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지 자식들의 짐이 되니 안되니의 걱정으로 포커스를 맞출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김영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