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난다.

by young long

얼마 전에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또는 의도로 고민해야 되고 극복하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이 버거워서 '속상하다! 아무 잘못도 안 하고 난 또 왜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다.


어제는 일 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야 하는 날이었다. `졸업'하였다는 주치의의 소견을 듣고 일 년에 한 번씩 집과 가까운 병원을 추천해 줘서 그곳을 다니는데 어느 해엔 "육 개월 후에 오셔야겠어요."라는 말을 듣고 심하게 위축되었던 때가 있었다. 건강검진 후 결과를 듣기 전 긴장감과는 비교도 안되게 떨린다. 천정에 있는 초음파 화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찔금 눈물이 났다. 의사의 손이 잠시 멈추고 기계음이 들릴 때마다 등이 서늘해지곤 한다.


사노라면 '죽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었다.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리고부터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아니 갑자기 삶의 모토가 '무병장수'가 되어버렸다. 필명을 영미의 영을 따서 'younglong'이라고 작명해 버렸다. 그토록 '죽음'이라는 것과 멀어지고 싶었다. 병을 몸에 담고부터는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 '완치'가 없는 병이라 '졸업'이라는 용어를 쓰는 주치의의 생각을 읽어서일까? '두려움'이 연해지긴 하였으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진료를 받고 병원문을 나서며 늘 하는 일은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어제는 걱정 끼칠 말이 아니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제일 기뻐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이런 모습이 걱정이 될까 봐 떠올리기만 하고 전화를 안 했었다. '이제는 저 위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계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 남편, 자식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싶게 세상은 그렇게 넓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노라면 있을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을 다 겪어본 기분, 그렇다고 또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남다르게 성숙해지거나 새로운 상황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도 않는다. 여전히 버벅거리고 무능함을 확인하며 그렇게 반복하며 살아간다.


병을 앓고부터는 생명의 존엄함을 체감하는 것 같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절절이 느낀다. 확실하게 장착하는 건 겸손이다. 원래도 없었지만 누적된 경험치로 생길 수도 있는 오만함이라는 것, 자칫 생길 수 있는 그 오만함이 안 생기고 더 심하게 겸손해지는 걸 스스로 확인해 버린다.


인간이기에 생기는 비루한 모습으로 인해 눈물이 난다.


매번 '잘 살고 싶은 욕심.' 그것과 '현실' 사이에서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게 되는 나를 확인하며 오늘도 그저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