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텃밭
쾅, 쾅쾅쾅 방금도 천둥이 쳤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바깥날씨와 일기예보를 번가라 보면서 언제쯤 텃밭에 갈 수 있을까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어제 아침에도 같은 행동을 하다가 일찍 텃밭엘 갔었다.
텃밭이 이래 봬도 두 곳에 있다. 두 곳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순차적으로 순회를 한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상상 이상으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있었다. 내 밭 끝자락쯤 둑이 무너져서 아랫밭들은 모래사장처럼 거의 사막인가? 하는 수준으로 밭작물들이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두 번째 텃밭엘 갔더니 바로옆밭은 위아래로 둑이 무너져 있었고 내 밭은 한 곳이 무너져 있었다. 아침에 그걸 복원하기란 역부족이라서 또 올 비를 생각해서 빗물이 순조롭게 흐를 수 있도록 수로의 흙을 삽으로 파서 만들고 부실한 몇 곳을 보완하고 출근했었다. 집에 와서 보니 손바닥의 피부껍질이 홀라당 벗겨져 있었다. 일할 때 조금 아팠으나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오늘 아침에도 무너진 언덕을 흙으로 쌓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법 완성도 있게 고치고 왔다. 더 하려고 해도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서둘러 집에 왔다. 추적추적 비를 맞고 오면서 '누가 시켰니?'라고 물으며 입 끝에 흘러나오는 실소를 막을 길이 없었다.
직장에 유난히 식물에 대해 해박한 이가 있다. 그분은 각종 식물을 기르고 꽃꽂이는 물론이고 씨앗을 발아시켜 나무로 성장시키는 능력이 남다르다. 좋아하고 잘하니까 텃밭을 가꾸지 그러냐고 물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얻은 건 별로 없으며 고생만 많이 하니까 안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해마다 장마철엔 재난급의 둑이 무너지는 등의 고초를 겪으면서 난 무얼 위해 자처하는 걸까? 뿐만 아니라 벌에 두 번이나 쏘여서 응급실엘 두 번이나 갔었다. 죽을 뻔도 했다. 그런데도 텃밭을 계속하고 있다. 쉽게 말해 반려식물급일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왜 기르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있는 답을 할까? 아니, 그거와는 약간의 격차가 있다. 벌레와 고라니, 비둘기 그리고 내가 함께 식용으로 먹으니 반려식물이라고 하는 것은 어패가 있다. 어쨌든 좋아서 하는 일이다.
세찬 빗물이 모자를 때리고 개미 때가 엄청 쪼아 먹은 발은 빗물에 흥건하게 잠긴 상태로 추적추적 걷는데 난 늘 내가 내 맘대로 좋아하고 상대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하고 때론 기대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확인하려들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 좋아한 게 아니다. 그냥 혼자 좋아했다. 막연히 이심전심이리라는 착각을 한 거다. 세월 속에서 아주 둔하고 느리게 알아차려버렸다. 슬프게도 누가 시켜서 좋아한 건 아니니까 스스로를 다독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인생 전체가 그렇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위로삼아 떠올리며 산다. 고맙게도 나 때문에 감동했다고 라디오에서 날 찾는 친구도 있었고,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내가 그립고 보고 싶었단 친구도 있었다. 무너진 곳을 복원하여 오이 고추 가지 가끔 옆집 밭의 도라지꽃구경도 하며 쨍하고 해 뜰 날도 있으니 밭고랑을 누비며 하던 대로 하고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