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육아
아이 셋을 키우며 매시간 고민했던 게 있었다. 조력자로서의 관여할 퍼센트가 늘 고민이었었다. 고민했다고 하기엔 좀 무색한 현실이 있었다. 첫째 둘째 셋째 90% 10% 5% 관여도가 그 정도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둘째에게 관여한 %를 30으로 썼다가 20으로 썼다가 10%로 낮췄다. 셋째는 10으로 썼다가 5%로 줄였다. 결국 첫째가 마루타였을까?
첫째 땐 '100% 자율에 맡겨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아이에게 뭐가 더 좋을까를 깊이 있게 고심했었다. 고심의 결과로 둘째 셋째에게 관여를 덜한 게 아니다. 체력적 한계라고 해야 더 적합하다. 대신 추측컨대 첫째의 삶을 둘째 셋째가 너무 가까이서 봐와서 자동으로 따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거나 현장에서 함께할 땐 다큐멘터리고 지나고 보면 추억이고 성장드라마다.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기 마련이다.
셋째를 키우면서 늘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첫째 둘째는 보이는 성과가 빼어났었다. 그에 비하면 셋째는 학업면에서 특별하게 빼어나지 않았다. 함께 공부를 하려고 하면 첫째 둘째는 빨리 정확한 답을 맞히려고 했다면 셋째는 늘 질문이 많았다. "왜, 꼭 그렇게만 해야 되느냐?", "이 방법도 있고, 또 저렇게 해도 되고, 등등"라고 했었다. 몇 번은 호응해 주고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랬었다. 제한된 시간에 정답을 맞혀야 하는 틀속에 가두기에는 버거운 존재였었다. '너를 품기에는 엄마가 많이 부족하구나!'를 절절히 느꼈었다. 그래서 더 점점 적극적 관여도가 낮아졌었다.
셋째의 질문에 대한 질 좋은 피드백을 못하는 한계를 일찍부터 느꼈었다. 일방적인 딴지 수준의 질문이 아니라 다 일리 있는 질문들이었었다. 그런 질문을 할 땐 어떻게 답을 해야 이아이가 확장될 수 있을까? 질 좋은 답을 하고 싶었으나 스스로 한계를 느꼈었고 속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 궁색하게 "이렇게 하기로 약속된 거란다."식의 말로 끝맺곤 했었다. 틀속에서 갇혀있는 판에 박힌 주입식 교육이 셋째에겐 필요치 않았었다. 창의력이 뛰어나서 문과생인데 과학발명품 대회의 작품을 만드는데 이과생들이 셋째와 함께하길 원했었다.
성장과정 중에 유난히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셋째를 기르면서 했었다. 쉽게 말하자면 부모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많은 질문들을 하면서 확장되고 성장하려는 시기에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는 자각을 했을 때 속으론 안타깝고 미안했었다. '미안하다 엄마가 많이 부족해서.' 그 후로도 어찌하다 교대를 진학했는데 좋아하는 음악과를 갔다. 발라드곡을 빼어나게 잘 부르는 건 알고 있었는데 발표회가 있다고 초대해서 갔더니 성악을 성악과 학생 이상으로 관중을 압도하며 불렀다. 환호하고 감동하면서도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이 마음이 싹텄었다.
초등학생이던 셋째는 학예회 때마다 무대에 올랐었다. 연극을 하는데 참여하는 친구들께 각자 준비물을 배당하고 본인도 무대크기의 큰 나무를 그려서 무대를 꾸몄었다. 그런데 학예회 전날밤 아홉 시경 어떤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사정상 파도 그림을 못 준비한다고.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시간도 지났었고 별도리가 없기도 하여 "리더는 본인이 솔선수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구성원이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걱정 그만하고 자거라."라고 말하고 잤었다. 그런데 학예회날 새벽에 한 뭉치의 뭔가를 옆에 끼고 현관에 서있었다. "그게 뭐니?"라고 묻자 안 보여주려고 했다. 집에 있던 이면지를 사용하여 길게 붙여서 밤새고 파도그림을 그려서 말려서 그걸 도르르 말아서 학교에 가져가는 중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방학과제로 큰 전지에 뭔가를 만들어 붙이거나 꾸며서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테두리를 꾸며주는 게 보통의 일이었다. 셋째가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그때도 큰 전지를 펴놓고 자로 테두리를 그려주려고 했었다. 그러자 셋째가 말했다. "엄마가 도와주시면 결과는 좋은데요 제가 할 기회가 줄어요." 딱 그렇게 말했었다. 막내에게 그 말을 듣고부터 속으로'그래, 맞는 말이다.' 하며 손을 뗐었다. 그래서 관여도가 5%였다.
가장 어린데 삼 남매가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막내는 아주 작은 거라도 세심하게 엄마에게 꼭 필요한 걸 챙겨 오고, 유치원생일 때도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아파트 정원에서 시들어가는 봉선화 나무를 뽑아와서 "이걸 삶아서 그 물에 담그면 엄마 발톱 무좀이 낫는데요."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시들어가는 봉선화 나무를 건네주었었다. 매번 울림이 있는 감동을 주는 아이다. 누나와 형이 막내를 '인성부자'라고 명명했다.
그런 막내가 이 주 후면 군대를 간다. 베란다에 놓인 청소기를 기대고 'ㄱ'자로 졸던 그 꼬마가 군대를 간다. 늘 귀여움이 한도 초과인 아이가 군대를 간다니 마음이 먹먹하여 막내의 모습을 글로 그려보았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