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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30. 2021

어느 아름다운 날들을 추억하며

미술관 기행

어느 멋진 날에 나는 꿈같은 여행을 했었다. 한창 그림을 배우던 때였다. 십여 명의 그림 동아리 회원들과 버스를 빌려 타고 전국에 있는 유명한 미술관을 탐방했었다. 육아의 한 중심에 서 있던 터라 혼자 집 밖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일탈인데 꿈에 그리던 미술관 기행이라니? 일탈의 설렘에 잠을 설치고 버스에 몸을 맡기는 순간 '아~ 진짜구나!'를 실감었다.


 먼저 햇볕의 금빛 환영을 받으며 공주 국제미술제가 열리는 임립미술관에 도착해서 친절한 설명이 있는 국제적인 작품들과 마주하였다. 그중에서 달나라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가 마음에 남았고, 수채로 그린 오묘한 느낌의 그림은 작가가 그 색을 사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보는 이로 하여 무지갯빛 신비로움을 느끼게 했던 작품은 새로운 감흥을 주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은 한 떨기 고혹스런 꽃처럼 느껴지는 호암미술관, 어느 예술가도 따라잡지 못할 거라 생각되는 자연, 그 속에 한국의 혼이 숨 쉬는 작품들이 어우러져 군더더기 없는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첫날의 마지막 코스이자 우리들의 숙소가 있는 인사동을 찾았다. 출렁이는 인파 속 안식처 같은 군소 갤러리들, 그곳엔 그야말로 예술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었다. 많은 전시장 중에 회갑기념 전시회장이 마음에 남는다. 빼어남보다 정성과 세월이 묻어있는 전시회가 농담 섞어 "회갑기념으로나 전시회를 할까 합니다." 했던 내 모습 같아 꽃이 그림 속에 빠지지 않았던 그 작가가 꽃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렇게 하루가 샤워 물줄기 속에 녹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을 즈음 피곤한 몸을 눕히려다 근처 탁주 집에서 동아리 회원들끼 탁주 한잔 그리고 담소,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의 추억 이상으로 오래 남을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다음날 우리들이 찾은 곳은 한국 현대미술관, 고 백남준 님이 연상되는 비디오 아트가 케이크처럼 기둥처럼 살아 움직이는 곳, 각 층마다 그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넓은 전시장 자체에 압도되고 작품마다 하고 싶은 얘기가 한나절 분량쯤 있어 보이는데 한정된 시간에 종종거리고 돌아본 6 전시실까지의 여행,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 한쪽 벽면을 다 채운, 초록과 빨강으로 성냥갑 크기의 문양을 만들어 바바리 차림의 사람이 걷다 만난 많은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 인생사를 보여주는 듯하여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소나무를 병풍처럼 그려둔 작품이 선생님께 배운 스크레칭 기법에 의해 그려졌다는 걸 알고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가르쳐주신 선생님 덕분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는 작품들이 한결 가깝게 다가옴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접하면서 물감과 캠버스만을 사용했던 이제까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 같은 작은 싹이 내게도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광주 비엔날레장을 향해 달렸다.


광주비엔날레장이란 책의 겉표지 같은 검은 바둑알로 만든 산수도가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기대 이상의 상상력이 숨 쉬는 아주 창의적인 작품들이 우리들을 매료시켰다. 전체적인 전시장 설치 자체가 각각의 작품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어떻게 보면 작품을 만든 작가와 비엔날레를 운영하는 관계자들의 절묘한 하모니가 돋보인 또 하나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우리 동아리 회원들이 몇 해째 꿈으로꾸웠던 일들이 현실 속에 실현된 멋진 날들이었다. 리고 그림을 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허기져했던 그 어떤 부분을 워준 귀한 시간이었다. 우리 동아리 회원들 모두 땅에 발을 딛고 걸으면서도 우리들이 걷는 걸음걸음이 정말 진짠가? 했었다. 믿기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며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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