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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01. 2021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속상한 마음

  요즘 때아닌 가을장마다. 곡식이 익어가는 시기에 장마라니? 더운 날씨에 후덥지근하게 비까지 내리니 사람들도 몹시 힘들다. 그렇다고 못 견디고 죽는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데 텃밭에 뿌린 씨앗은 떡잎이 난 후 못 견디고 죽는다. 당근, 양배추, 얼갈이, 무가 죽었다. 배추와 케일도 겨우 버티고 있다. 다시 씨앗을 뿌려보지만 계속 내리는 장마를 견딜지 걱정이 앞선다.


  때아닌 장마?! 딱 지금의 내 마음 상태가 울적하 습하다. 한 달 이상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니까 기간으로 봐서는 내 마음도 장마.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많이 자주 와서 불쾌지수가 높은데 이 새벽 비 내리는 소리가 위로가 된다. 비가 우리에게 두 가지 마음을 갖게 한다. 불쾌감과 위로의 마음을 갖게 한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생각해도 믿기지 않고 속상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아서 어젯밤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당사자에게 전화를 했다. 혼자 감당이 안되고 해소할 길이 없어서 아니, 해소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 "내가 이러이러한 말을 들어서 감당이 안 되고 속이 상했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와~, 본인이 "언제 그랬냐?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그렇게 말했으면 잘못했다, 미안하다."라고 한다. 믿고 의지하며 살았던 터라 그만큼 힘들었는데 그렇게 쉽게 말하다니?! 그동안 내 마음의 장대비는 뭐였나? 허망하기까지 했다.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와 대화를 해서 한결 가벼워진 내 마음은 아직 흉터가 남아있는데 금세 다시 그분을 품고 살려고 마음자리를 살핀다. 그런 내가 안쓰럽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어쩌면 덫인지도 모른다. 못 견디게 힘들어서 '외롭다고 울부짖지 마라, 사람은 원래 혼자다.'라고 되내어 봐도 벌써 그 말속에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며 기대고 싶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난 혼자인 것 같은데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항상 깔려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상처 받고 괴로워했던 기억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또 어울려 살려고 하는 걸 보면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덫인 게 분명하다.


  덜컹거리면서 사는 인생, 그래도 크게 혼돈의 회오리 속에 휘말려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살지 않고 이만하길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극한의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정화 시스템을 온 힘을 다해서 가동하면서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넘고 건너는지도 모른다. 힘든 고비를 겪을 때마다 나 스스로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센 비바람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도록 말이다. 거센 비바람이 내게 불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게 더 먼저인가? 마음처럼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겠는가? 누군가에게 바래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마음 내가 다잡고 남은 인생 안전하고 행복하게 운전해야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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