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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02. 2021

교학상장

자녀교육

  미루고 미루던 비문학 책 한 권을 어제까지 읽으려다가 못 다 읽고 마침내 오늘 새벽 끝을 봤다. 후련하다. 역시 내 취향은 문학이지 비문학은 아니다. 문학 속에 녹아있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많은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이런 생각까지 해가면서 그 책을 읽어 냈다. 재미있는 문학 책은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면 아까운 책들도 있다. 재미있으면서 몸에도 좋은 책을 만나고 싶다.


  자녀를 키우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서울대 간다.' 그 논리라면 우리 아이들은 책을 좀 덜 읽었나 보다. 내가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실천한 게 있다. '부모가 책을 읽어 주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따뜻한 사람이 된다.' 이 말을 더 맹신해서 난 실천했다. 도서관에서 백팩에 한가득 책을 빌려와서 아이 셋과 함께 나란히 누워서 매일 책을 읽어 줬다. 도서관에서 여러 번 다독상으로 문화 상품권을 선물 받아서 그걸로 또 책을 사서 봤었다. 옹기종기 도란도란 그때가 그립다.


  나는 못하는 게 좀 많다. 노래를 못 한다. 그리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나도 못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어도 못 한다. 노래를 못하는데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 아빠도 평범한 수준인데 아이들은 노래를 잘한다. 큰아이는 초등학교에서 학예회 때 오디션으로 독창 한 명을 뽑는데 그 한 명이 되었고 대학에서도 밴드의 보컬을 했었다. 막내는 대중음악은 물론이고 성악까지 탁월하다.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노래부를 기회가 있는데 그때마다 등에 땀이 나고 하물며 노래 불러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은 자리는 핑곗거리를 찾아서 피하게 된다. 그런 엄마와는 달리 아이들은 그런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엄마를 향해 우리 둘째가 한마디 한다. "엄마는 스스로 최면을 건다. 노래를 못 한다."라고 어쨌든 결론은 같다.


  영어도 못한다. 그래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볼 때마다 시험 범위의 본문을 달달 외웠었다. 치명상을 피하기 위한 나만의 생존법인 격이었다.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하는 영어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도 애썼다. 영어를 못한다는 주제 파악의 결과로 시험과목에 영어가 있는 도전은 스스로 포기했었다. 자식들에게 영어가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동요도 영어, 비디오도 영어 어려서부터 철통 대비를 했었다. 다행히 셋다 영어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하물며 둘째는 영어 토론하는 TV 프로그램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냈었다.


  모든 공부를 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했었다. 다 잊고 살았던 과학 과목까지 다시 공부하게 되니까 갑자기 때아닌 박학다식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착각도 하게 되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오 학년 때인가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온전히 아빠의 지도로 땄다. 그런 아이를 보고 나는 학원엘 등록해서 똑같은 자격증 두 개를 취득했었다. 덕분에 경단녀를 면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되었었다.


  뭐 그러면 하나라도 엄마가 잘하는 게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수학을 좋아했다. 중학교 어느 중간고사 때 수학선생님으로부터 "교직 생활하면서 내가 낸 문제를 다 맞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이런 진한 칭찬을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원래 칭찬에 약하다. 그런 자신감으로 첫째, 둘째까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매일 올림피아드 문제 등 최고 난이도의 문제를 경주하듯 풀었었다. 이렇게 열심히 함께하다가 중학교 때 큰아이가 음악 이론 시험공부를 하는 걸 옆에서 보고 큰아이는 혼자 하게 뒀었다. 짧은 시간에 시험 범위의 곡들을 훑어보더니 가리고 그 곡들의 악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그리는 것이다. 믿음직했다.


  미장원에서 만난 칠십 대 어르신께서 "이들에게 도시락 네 개씩 싸줄 때가 좋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었다. 아이 셋 모두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내가 이렇게 편해도 되나?' 믿기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가 점점 안정을 찾아가면서 슬그머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던 그 시간들이 하나둘 생각이 나면서 조금씩 그리워지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함께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펼쳐나갈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필요한 엄마로 부족한 모습을 보완해가면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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