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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11. 2021

존중은 사랑의 증거다.

존중

  나와 다른 사람 간의 관계를 말하기 전에 나란 사람을 먼저 들여다보면 연령대별로 좋아했던 것들이 달라져간다. 음식은 젊어서는 양식이 좋더니 지금은 한식이 더 좋다. 더 좋아하는 꽃도 조금씩 달라져간다. 좋아한 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행동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상상도 안 해봤는데 요사이 간혹 혼잣소리도 한다. 집안 청소도 예전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청소를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한다. 이렇게 변화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정하기 싫지만 노화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 혼자도 시시각각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는데 나도 나를 되돌려지지 않는데 남을 어떻게 변화시킨다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속으로라도 이런저런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처음에는 서로 조심하고 어려워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편해지는 장점도 있지만 그 편해지는 걸 좋은 방향으로 계속 유지시키지는 못하고 경계를 넘나들면서 무례해지기까지 해진다. 그러는 와중에 각자 가지고 있는 인성이랄까 품격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를 간음하게 다. 뭐든 애초에 없었던 사람도 있고 있어야 할 게 없고 없어야 할 게 있는 경우도 있다.


  이삼십 대 젊은이들 중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이들을 간혹 만난다. 예쁘고 친절하면서 누가 봐도 참한 젊은 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의 이익과 무관한 사람이란 걸 인지하기 시작하면 아주 딴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조금 무섭고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인생 그렇게 길지 않다. 살다 보면 깨닫겠지만 뭐든 아니 나쁜 것 일수록 최대 피해자는 상대가 아니라 본인이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러지 말자, 제대로 멋지게 살자.


  예전부터 사위를 '백년손님'이라고 칭하는데 어렵고 귀한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그 좋은걸 이제라도 며느리에게도 '백년손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매사 가까울수록 귀한 손님처럼 서로 대해야 평화가 유지되고 서로 존중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며느리는 '백년손님'과는 사뭇 다른 대우를 받고 살았다. 지금 칠팔십 대 어머니들의 며느리 생활은 순종 그 자체였고 그에 반해서 그분들은 며느리들한테는 별 대접을 못 받는다. 오륙십 대는 그래도 조금은 본인 목소리를 내는 며느리 생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연령을 막론하고 지금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을 상전 모시듯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세 시간씩 버스 타고 반찬을 만들어서 아들, 며느리 집 앞에 가서 경비실에 맡겨 두고 되돌아가는 게 그 대표적인 사례다. 들어가 보지도 못할 거면 가지를 말아야지 그건 남보다 못한 거고 이유야 어떻든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혼율이 높고 맞벌이고 사는 게 지뢰밭이라고 하더라도 결혼하여 성이 다른 자식들이 섞여 있더라도 자식은 자식이다. 슬프게 문 앞까지 가서 들어가 보지도 못할 거면 그냥 가지를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존중이 아쉽다. 자식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만큼의 수준은 아니다. 굶어 죽지도 않고 경우에 따라 부모 세대보다 더 잘 먹고 산다.


  며느리 시어머니 부모 자식과의 관계에서 사노라면 별별일들이 많다. 주변에서 들어보면 시부모님이든 친부모님이든 어르신들의 이해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자주 보는 자식은 홀대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자식들에겐 말할 수 없이 극진하시다. 잘해주고 싶어도 잘 못 보니까 한꺼번에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실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자주보든 그렇지 않든 막상 차별받으면 많이 서운하다. 나라면 똑같이 해주던지 자주 보는 자식을 고마우니까 더 잘해줄 것 같은데 나도 그 입장이 되어봐야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또 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친구는 물론 직장 동료 하물며 옆집 아줌마에게 까지도 정이 싹트는데 시부모님에게는 그런 순수한 정이 싹트지 않는다. 그런데 시동생들에겐 말도 못 하게 정이 들었다. 시누이는 또 그렇지 않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유가 뭘까? 매사에 평가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에게는 정이 안 드는 걸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부든 부모 자식이든 형제자매든 친구 간이든 그 어떤 관계든지 기본적으로 상대를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까울수록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상처가 크게 느껴진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상대일수록 조금은 어려워하면서 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가깝다는 이유로 이해하겠거니 하면서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의 경우는 내 친부모님은 늘 나를 이해해 주시겠지 그랬기에 소홀히 대하고 시부모님께는 몸과 마음을 바쳐서 충성을 다했다. 살아놓고 보니, 피와 살로 나를 낳아주신 친부모님께 더 잘했어야 했다. 영원토록 사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또한 내가 소홀하면 내 주변 사람들도 '그래도 되나 보다 !'그렇게 학습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가깝게 생각할수록 나부터 더 위하고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존중은 사랑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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