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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13. 2021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직업, 꿈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가 답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다. 질문자의 의도가 무엇인가가 답의 향방을 정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미처럼 살 것인가?, 베짱이처럼 살 것인가?, 소신껏 살 것인가?, 다른 사람들처럼 살 것인가? 등 이런 색깔의 질문인 것 같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는 직업, 일 그런 답변을 원하는 질문 같다.


  어려서부터 "꿈이 뭐니?" 이런 질문을 많이 강요받고 산다. "장래 원하는 직업이 뭐니?"가 우리들이 늘 하는 질문의 의도인데 꿈이 곧 원하는 직업이 되어버리게 질문을 한다. 꿈을 완전히 축소시키는 잔인한 행동이다. 꿈이라고 하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비행기보다 더 빨리 가고 싶은 곳을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모두가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나도 새처럼 날고 싶다. 또는 농작물이 병이 안 들게 품종을 개량해서 안전한 식자재를 공급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사하라 사막에서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날마다 낚시만 하는 삶을 살고 싶다. 등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원하는 직업으로도 그리고 순수하게 꿈꾸는 삶도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저러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신중하고 잘 준비해서 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멀티시대니 하면서 직업을 하나만 갖고 일생 사는 게 아니라고들 말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그런데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직업을 평생직업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게 꼭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그 분야의 '장인'이 되려면 한우물을 파야한다. 즉 전문가가 되는 장점도 있다. 그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도 반영되겠지만 한번 발을 딛게 되면 숙명처럼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할 경우가 많으니까 정말 신중히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니는 골 과일 아줌마가 있었다. 그분은 노상에서 과일을 팔고 며칠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 나타나셨다. 알고 보니 몇 개 지역을 돌아가면서 과일을 판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만에 한 번씩 나타나신 것이었다. 그분이 파는 과일은 품질도 좋고 가격도 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골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일 년을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오랜만에 나타나신 그분은 한쪽 다리를 잃어버리셨다. 트럭으로 과일을 이동하여 장사를 하는데 상하차 하다가 사고가 나셨다고 했다. 연세도 있으신데 아픈 몸을 이끌고 또 과일 장사를 하시는 것이다. 사정은 있으시겠지만 코끝이 찡해지면서 긴 한숨이 들이쉬어졌다. 장사가 잘돼서 고생길을 접을 만도 할 것 같은데 험난한 일을 하심에도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 직업을 잘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간절히'란 단어에 '강력하게 노력하고 준비하면'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속뜻을 제대로 실천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 당신은 꿈을 이루었나요?" 하고 질문하면 꿈의 오 할 정도는 이루었다고 본다. 열개 중에 다섯 개가 아니고 각각의 것들의 성취 정도가 오 할은 된 것 같다. 그 정도밖에 노력을 안 한 결과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좀 더 노력했으면 못할 것도 없겠다는 조그마한 가능성을 느낀 것이다. 십 대 때 장래 희망이 몇 가지 있었다. 누가 들으면 웃을까 봐 걱정되지만 직업으로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현모양처가 되겠다고도 했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책을 한 권 쓰고 싶어 했었다. 교사는 유치원 교사 자격증은 있으니 자격증을 써먹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될 것 같고 다른 일들은 그래도 시늉은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제대로 간절하게 노력하면 꿈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꿈을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로 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일명 '피나는 노력의 결과' 즉 본인의 노력이 팔 할은 되는 것 같다. 이 정도 걸어오다 보면 '핑계'와 '게으름'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집념을 가지고 더 강력하게 노력했었어야 했다. 내 젊은 시절을 더욱 멋지게 지냈어야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제대로 방향을 잡고 전심전력을 다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위해서 멋진 나를 만들어 가는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스스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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