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Sep 28. 2021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싶다.

나의 위치

  모든 게 핑계라는 걸 안다. 다소 말이 안 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보련다. 어쩌다가 여자로 태어나서 결혼이란 관문 속으로 들어가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뭔 상관이람? 계속 다니지 왜 그만둬서 여자니 결혼이니 말 같지 않은 핑계를 읊어대나 할 것이다. 삼십 년 전에는 그게 불문율이었다. 그런 데다가 남편과 한집에서 살 수  없는 거리에 직장이 있었다. 그 당시엔 남편이랑 수입은 거의 같았는데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내가 스스로 직장을 그만뒀다. 그 후 전업주부 십칠 년 만에 지금의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아주 소박한 급여를 받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면서 나름 매력 있는 업무를 하며 십 년이 넘게 다니고 있다.


  뭐가 문제이기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려고 하느냐?~ㅎ, 요지는 결혼이고 뭐고 다니던 직장을 쭉 다녔더라면 내 목소리를 마음껏 내면서 멋지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 안타깝다는 것이다. 내 나이에 걸맞은 직함을 가지고 굵직한 일을 척척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문득 애처롭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녔더라면 못해도 임원진엔 속할 텐데 지금 내 처지는 뭔가 싶다. 그래도  업무가 상당히 독립적이고 전문적이기까지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일들이 마땅치가 않아하고 싶은 말들이 목젖을 넘어오려고 하는데 내 위치가 치인지라 '조용히 하던 일이나 하셔~'이렇게 나를 꾸짖는다. 끝내 하고 싶은 말은 바깥세상 구경을 못 하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어떤 자리에 있던지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다 하고 살지는 못할 것이다. 스스로 필터링하여 자제하게 되고 그게 반복되다가 침묵이 금이란 것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를 닮아선지 사회생활하다가 학습된 건지 제법 용기 있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산다. 그럼에도 그게 아닌데 하는 일과 불의 앞에 하고 싶은 말을 못 다하고 산다. 그럴 때마다 내 처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슬픈 일이다. 더 노력하여 내 위치를 끌어올렸어야 했었다. 문득 어떤 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공부를 잘하게 된 이유가 선생님과 친구들이 공부 못한 자신의 말은 귀 기울이지 않고 일등 하는 친구의 말엔 즉각 반응하고 개선이 되는 걸 보고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한 사람 정도엔 못 미치지만 나름 수석 졸업도 해보고 공부도 열심히 했었다.


  뭐가 문제여서 난 용이되지 못하고 스스로 이무기에 그쳤다고 생각하는 걸까? 차가운 물에 천년을 견뎌야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될 수 있는 거라면 극한의 노력을 덜 했다는 결론이다. 맞는 말이다. 더 노력하며 살았어야 했었다. 지금이라도 더 노력하던지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길이 막연하고 방법을 모르겠다. 이 나이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고 싶고 자리를 운운하는 걸 보면 나란 사람은 남달리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다. 일찍 파악하고 그 방향으로 정진했어야 했다. 마음 수련이 필요하다. 경력이 단절되었기에 리더가 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할 것 까진 없다.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일 그리고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 기간 동안 해냈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셋이나 낳고 키웠지 않는가?! 뭘 더 욕심내느냐? 뭐 그리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자신을  자책하는가? 아직도 모르냐? 세상사 다 가질 순 없다.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것도 있어야 맞다. 난 더 소중한 걸 얻었다. 현재 순응하며 행복하게 살자. 그럼 된 거다.


  

작가의 이전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