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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07. 2021

가벼움의 미학

욕심에서의 해방

  욕심이 없다는 것과 의욕적이지 않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욕심은 갖고 싶은 것이고 , 의욕은 하고 싶은 것 일까? 욕심이 생겨야 하고 싶어 지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들은 한 몸이네? 어허, 큰일이네?! 살다 보니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고 스트레스의 원인은 욕심인 것을 알았는데 욕심이 생겨야 의욕이 생긴다면 살아 있다는 건 병과 동행인가? 산수가 쉽지 않네! 욕심 없이 살려고 했더니 의욕이 안 생기게 생겼으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닐게 아닌가? 의욕이 없다는 건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무미건조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다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게 생겼네~ㅎ.


  잘 살아보기 위해 욕심을 버리려고 생각하니 오만 걱정이 앞을 막는 것만 같다. 얼마 전까지 나의 의욕은 용광로의 불과 같았다.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었다. 간혹 지금도 그 버릇이 살아나곤 한다. 그런 생각과 맞닿고 있는 게 있다. 좋은 사람이란 평가를 원했다. 싫은 소리를 극도로 싫어하고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수면 아래 발길질을 쉼 없이 했다. 쉽게 말해서 피곤한 스타일이다. 갖고 싶은 건 나를 향한 좋은 평가만큼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기를 원했다. 욕심이다. 욕심은 그러고 보니 좀 과한 게 욕심이네?! 의욕이 없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네 과하지 않으면 되니까 수위 조절만 하면 되네?!


  최근에 스스로가 감지한 게 있다. 스스로 조금씩 욕심에서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 주변에 좋은 분들이 침묵해도 이겨내는 저항력이 생겼다. 내 기쁨에 같이 기뻐하지 않아도 잠시 서운할 뿐 거뜬히 살아진다는 걸 알았다. 버릴 수 없었던 것들도 버려지는 걸 알았다. 뭐든지 보려고 시력이 좋길 원했지만 노안이 되듯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하나하나 놓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잘 버텨지는 걸 느낀다. 슬퍼해야 하는 건가? 생물학적인 단순 노화인가?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나이가 들면서 익어가는 걸까? 스스로 단단해진 건가?


  모든 걸 움켜쥐고 어금니 불끈 악물고 달려야 하는 게 인생인 줄 알았던 내가, 내 마음이 이렇게 치열하지 않아도 살아진다는 게 경이롭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지 않아도 된다. 잘한다. 좋은 사람이다는 평을 안 들어도 된다. 따뜻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 스스로에 의해서. 욕심의 노예가 아니어도 살 수 있다. 어쩌면 내 안에 오래오래 저축해 온 믿음직한 내가 있다는 걸 요사이 알게 된 것 같다. 주변의 그 어떤 가벼움도 잠시 불편할 뿐 내 모든 걸 흔들 수는 없다는 것도 학습 완료 상태다. 이젯것 갖고 싶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을 마음껏 즐기면서 내속에 자리 잡은 평화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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