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헤어지기 연습
오래된 물건을 버리는 일에는 으레 그리움이나 슬픔이라는 무거운 감정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지난번 이사할 때도 추억이 담긴 것들에 적잖이 가슴이 아프기는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이사에서는 버려지는 물건에 쓸쓸함을 넘어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집이 재개발로 사라지게 되어 새로 터전을 옮겨온 집에서 2년 6개월을 살았다. 이번에는 전세 사기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했지만 지난번 재개발 지역에서 겪어야 했던 일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재개발로 없어진 그 집에서는 우리 편에서 권리를 찾아주겠다고 나타난 변호사조차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식이 설령 법에 어긋나는 일일지라도 굉장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집에 얽혀 일어난 두 차례의 악몽 같은 사건을 통해서 양심과 윤리가 자취를 감추고 욕망과 이익이 우선되는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지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수십 년을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곳에서 나올 때는 대단히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크고 작은 나무와 화분들, 장독대를 가득 차지했던 어머니의 항아리들, 어린 시절 내가 사용했던 그릇과 내가 입었던 옷을 비롯해 자잘한 살림살이들을 내용물에 따라 색깔이 다른 쓰레기봉투에 담거나 골목 앞에 내놓았다. 그런데 책만큼은 그대로 버리기가 무엇해서 배다리 헌책방으로 싣고 갔다. 나름대로 쓸 만한 것들을 골라서 가지고 갔는데 절반 정도 선택을 받았다. 나머지 책들은 산더미처럼 싣고 고물상으로 가져가서 겨우 몇천 원을 얻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버리고 이사했는데 그때 버리지 못한 아까운 것들을 이번 이사에서는 반드시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자꾸 망설이게 되어서 버릴 물건들을 거실에 진열해 넣고 수시로 점검을 했다. 버릴까? 안 된다. 그래도 버려야 한다.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 그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이삿날이 임박해서까지 결정을 짓지 못한 것은 대부분 책과 결혼할 때 혼수로 산 것들이었다.
식구가 많은 집으로 시집을 간다면서 어머니는 동인천 행남자기 매장에서 엄청나게 값비싼 그릇을 많이도 사 주었다.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칠 때 이집 저집으로 그릇을 빌리러 다니면 얼마나 구차스러운지 아니? 어머니는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내면서 마구 그릇을 쓸어 담았다. 비싸게 산 금테 두른 밥주발과 국그릇 세트는 이사를 다니면서 이가 빠져서 예전에 버려야 했고, 쓸 일이 없었던 찻잔과 소주잔과 양주잔 세트들도 일찍 버려졌다. 그릇 다음으로 안타까운 혼수는 이불이었다. 한 번도 펴지 않은 그 많은 이불과 베개 역시 일찌감치 없애버렸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물건들이 귀했고, 혼수를 적게 해왔다는 타박에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릇과 이불을 살 돈으로 부동산을 사놓았더라면 나중에 큰돈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집이나 땅이 무척 싼 편이었다. 지금의 서구와 계양구 같은 곳에서는 말만 잘하면 땅을 거저 얻을 수 있었다는 소리가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이사에서 어머니가 마련해 준 것들을 다 버릴 수가 없어서 접시 여러 개와 자수가 놓아진 기다란 베개와 이불을 싣고 왔는데 이번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것들을 그만 끌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긴 시간을 함께했기에 이별하는 데 애를 먹었다. 특히 골동품처럼 가지고 있었던 무거운 세숫대야를 버리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소리 나는 세숫대야를 쓰면 잘 산다며 크고 두꺼운 스텐 세숫대야를 건네던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용하지 않고 모셔두기만 해서 아직도 새것처럼 반짝이는 그 세숫대야가 거실 한복판에서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다가 밖으로 끌려 나갈 때 내 인생도 그렇게 종점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세숫대야보다 더 애달픈 것은 지난 이사에서 버리지 못한 책들이었다. 영원히 보유하고 싶었던 그 책들을 이제라도 버려야 한다는 각오 앞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폐지 줍는 노인에게 실려 보낸 다음에도 남은 책들은 거실에서 몇 날을 버티고 있었다. 차마 고물상으로 보낼 수 없어 그 책들을 데리고 알라딘 중고 서점으로 가는 길에서는 마치 내 전두엽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은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만 인간 수명이 날로 늘어나는 시대에 살게 되어 은퇴 후에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기다란 저녁노을을 끌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사를 다녀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육중한 가구를 전부 가벼운 것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영구성과 견고함에 비중을 두고 장만했던 장롱과 장식장이 폐가구 스티커를 부착한 채 버려졌다. 이미 모든 게 일회용으로 바뀌고 있었고 오래 쓰는 게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렸다. 값싸고 품질 좋은 물건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우리나라에도 천국이 도래했는지 모른다. 오래전에 집 한 채 값을 주고 샀던 피아노를 길에 내놓아도 아무도 탐내지 않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집으로 큰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아서 원하지 않아도 자꾸 이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개발과 전세 사기로 연거푸 살던 집에서 쫓겨나면서 우리나라 경제계와 정치계를 비롯해 곳곳에 퍼져 있는 어두운 뒷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각계 고위층들과 관련자들이 부동산을 가지고 검은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이삿짐을 쌌다.
이사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냐는 지인들의 성화에도 내 집에 정착할 마음이 별로 없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식물의 이식처럼 새로운 환경에 접속하느라 얼마쯤 곤란을 겪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감당할 힘이 있다. 그리고 늘그막에 맞게 된 이삿짐 싸기를 두고 나는 헤어지기 연습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축적했던 물건들을 버리면서 그것들과 얽힌 추억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과거를 떨쳐내는 일은 남은 날들을 헤아리게 했고 지구를 떠나는 날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젊은 시절의 이사가 자신을 확장하는 것이었다면 나이 들어 하는 이사는 자신을 버리는 작별 연습이라고 일컬을 만했다. 인생에서 만나는 일은 퍽 중요한 것이지만 헤어지는 것 역시 소중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꾸 가벼워져야 한다고, 애착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면서 이삿짐을 꾸렸다.
머지않아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한다. 그때는 이번 이사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것들을 상당수 버리게 될 것이다. 이사를 반복하면서 지난날 내가 쌓아온 감정들도 적잖이 버리게 되는 경험을 했다. 내게 못되게 굴었던 이들에게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거라는 너그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상대도 불안하고 화가 나서 그랬을 거라고, 나에게도 적잖이 책임이 있었을 거라고, 지난 시간을 성찰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재개발 지역에서 만났던 파렴치한 인간들과 조직적으로 전세 사기를 친 임대인에 대해서도 사람 마음에 욕심이 앞서면 그럴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사를 거듭하면서 나는 작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인연들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느끼게 될 것이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질 것이다. 왕조 시대 백성들을 수탈하듯 서민들의 희생 위에 부동산으로 부를 쌓으려는 권력자들의 협잡과 계략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살아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인생은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거듭 헤어지기 연습을 하는 사람에게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