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떨이 4호
아버지는 항상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묵직하고 번쩍이는 크리스탈 육각형 재떨이.
국민학교 때부터 한결같은 재떨이다.
똑같지만 다른 재떨이.
아마 4호쯤 될 거다.
1, 2, 3호는 순차적으로 박살났다.
아버지가 벽에 집어던져 산산조각이 났다.
달력 뒤쪽에 세 군데 상처가 남았다.
어머니 얼굴에도 상처가 남았다.
아버지는 항상 묵직하고 빛나는 경고장을
거실에 두셨다.
겨울이면 거실이 얼음장이다.
환기하느라 베란다 문은 활짝 열렸다.
바람 센 날엔 재떨이 속 재가 날렸다.
한여름엔 더워도 내 방문을 열 수 없다.
담배연기는 구석구석 스며든다.
어머니도 똑같이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가 밤늦게 술 취해
귀가하기 전까지 피워댔다.
자정 무렵 급하게 환기를 시키고
재떨이도 비워 놓는다.
나는 커서 절대 담배 안 피울 거다.
두 분 앞에서 소리쳐 선언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다.
아버지는 비웃었다.
그래, 어디 니가 안 피우나 한번 보자.
비아냥거리던 아버지 표정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스무 살. 부산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자취와 동시에 흡연을 시작했다.
친구들도 전부 흡연자다.
하루에 두세 갑씩 피워대며
나를 망가뜨렸다.
비릿한 입 모양이 떠오를 때마다
성냥불을 당겼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뭐라고.
아버지 뒤를 따라 걷는다.
첫 번째 패배감을 맛봤다.
나는 겉돌면서 술에 취해 싸움을 일삼았다.
시비를 걸고 모르는 이들과 피를 교환했다.
당시 차량들은 블랙박스가 없었다.
방범용 CCTV도 없었다.
눕히는데 10초도 안 걸린다.
쓰러진 놈을 두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달렸다.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술 먹고 툭하면 주먹질이다.
내가 맨날 보던 아버지 모습이다.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래침을 뱉으며 담배를 꺼내 문다.
라이터 불이 떨리고 있었다.
군에 입대했다. 90미리 무반동총.
완전군장에 17키로 쇳덩이를 얹고
가파른 산을 누벼야 했다.
아버지는 군에서 행정병이었다.
육신이 고될수록 쾌감이 밀려온다.
당신보다 더 지옥 같은 경험을 하고,
악바리가 되어 복귀할 것이다.
앞으론 어머니도 지켜낼 것이다.
백일휴가를 나왔다.
두 분은 이혼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고,
아버지는 한결같았다.
나는 어머니를 지켜낼 것이다.
상병휴가를 나왔다.
복귀 이틀 남기고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급성 뇌출혈로 이튿날 돌아가셨다.
나는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르고,
뼛가루를 산에 뿌렸다.
담배연기가 눈을 찔렀지만,
눈물 한방울 흐르지 않았다.
라이터 불빛은 얼어붙은듯 고요했다.
악바리는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
십오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꽤 많은 재떨이를 깨뜨렸다.
라이터 불빛은 오래도록 흔들렸다.
딸 수아가 태어났다.
단 하루 만에 담배를 끊었다.
딸의 애착 토끼를 목숨처럼 수호한다.
아들 수호가 태어났다.
거실에서 홀로 갓난아들을 안아올렸다.
이상하게 화가 치밀었다.
이 핏덩이가 미웠다.
숨을 몰아쉬는 아들 얼굴에서
재떨이 파편을 피하던 내가 떠올랐다.
나와 똑같이 주먹에 피를 묻히고,
입술에 담배를 문 채
비릿하게 웃는 괴물이 그려졌다.
핏속에 이식된 씨앗이 보인다.
핏덩이를 쥔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우리 집 거실엔 크리스탈 재떨이 대신,
공룡 장난감과 동물 인형들이 널려있다.
달력 뒤쪽 벽에는 파인 자국 없이
아이들 색연필 낙서가 가득하다.
아내 얼굴엔 멍 대신 공룡 스티커가 붙었다.
나는 아직도 아들을 안을 때마다,
손끝에서 1호 재떨이가 뿜어내는
서늘함이 만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