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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Jan 15. 2023

강릉 파도에 맞춰 잠시 쉬어가기

어느날 바다가 보고파 찾아간 강릉에서 '나'를 찾기

이상하게, 바다를 봐야 마음이 열릴 것 같았다.

답답하고 무료한 서울의 자취방을 떠나, 끊임없이 파도가 솟구치는 겨울바다를 향해 떠나고 싶었다. 

권태로 가득 찬 동네에선 도저히 솔직한 나의 감정을 끄집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장 빠른 강릉행 기차표를 끊었다. 오랜만에 멋진 경치를 담을 카메라와 글을 적을 노트북을 담고 그렇게 강릉으로 떠났다. 가장 서울에서 가기 편한 바다의 도시, 강릉.


강릉의 안목해변에 와선 그냥 파도 앞에 누웠다.

그렇게 파도소리에 숨을 맞추다 보니 문득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얼굴로 진눈깨비를 맞는 시간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파도와 숨을 맞추며 많은 생각이 정리됐다.

끊임없는 파도 앞에 함락되지 않을 모래둑은 없으니까.


파도와 숨 맞춘 뒤 느낀 점은,

- 파도처럼 인생은 끊임없다는 것.
- 큰 도전일수록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것.
- 실망과 절망은 깊게 깊게 안으로 파내는 것.
- 안으로 삭히고 삭히면서 깊어지는 것.
- 깊게 안으로 파낼수록 아픈 것.
- 그러나 큰 도전에는 버릴 게 없다는 것.
- 크게 도전하고 떨어져야 단단해지기도, 커지기도 한다는 것.
-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원하던 하늘에 닿을 것.
- 이런 여정에는 버릴 경험이 없다는 것.
-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건, 그만큼 떨어지고 아픈 인생을 감내하는 것.
- 그래야만 재밌는 변화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 앞으로 계속, 크게 떨어지면 아플 목표를 향해 도전할 것.


대자연 앞에 서면 사람은 잡념으로부터 발가 벗겨진다.

그리고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집단에서 벗어나, 나 자신은 어떤 개인이고 인물일까'

파도 앞에서 다시금 찾아온 정립의 시간을 보내며 솔직한 에세이스트가 돼 보자 다짐했다.


내가 만들어온 이야기가 나 자신을 대표한다는 말이 있다.

나의 인생을 대변해 줄 나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난 열일곱부터 시작된 입시 지옥에서 열아홉, 스물, 스물한 살까지 이어진 치열했던 수험의 구덩이에서 나와, 다시는 구덩이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20대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말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또한 구덩이 밖 세계가 너무나도 값져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보냈다. 어릴 적 원했던 꿈을 하나씩 쫓아갔다. 최고의 특수전 작전요원이 되고 싶었고, 최고 지성의 요람에서 함께 영상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스무세 살엔 UDT에 합격했고 16주간의 훈련소생활 끝에 생존에 가까운 수료를 했다. 그리고 스물일곱 엔 스무 살부터 꿈꾸었던 연세대학교 디지털예술학 연계전공을 성공했다. 더디고 많이 꺾였기에 아프고 오래 걸렸지만, 결국 해낸 경험들은 힘든 만큼 나만의 자산이 되었다.


나는 어느 기업 작문시험에서 나를 바다거북이라 칭한 적 있었다.

물까지 가기 정말 어렵지만, 물에 도착하면 누구보다 빠를 수 있는 바다거북.

강릉바다의 파도소리에 맞춰 숨을 쉬다 보니 비로소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지금껏 지나온 나날들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다시 도전 앞에서 약해지는 건 맥락에 맞지 않는다.

'도전하는 만큼 내 것이 되는 것'이란 격언을 강릉의 파도소리를 통해 되새기게 되었다.


바다거북의 여정은 끊임없는 파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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