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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Aug 10. 2022

비로소 '부끄러워' 지기로 했다.

온전히 '나'와 조우하는 순간

오랜만에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마지막 10번째 벤치프레스 세트 중 바벨에 깔려버린 것이다.

무기력하게 반쯤 깔린 나를 트레이너가 달려와 꺼내 주었고

한고비를 넘긴 나는 너털웃음만 나왔다.

사실 헬스인들에겐 이런 상황에 걸맞은 밈이 존재한다.


만약 내가 벤치를 하다 깔린다면 바벨 양옆에 20KG 원반을 꽂아달라



마치 더 큰 무게를 하다 깔린 것처럼 나의 최후를 포장해달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최후라기보다 나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느낌을 느꼈다.

마치 금단의 영역을 넘보듯, 혹은 오만한 가죽 밑에 숨어있는 연약한 핏줄을 발견한 듯

온전한 나 자신을 조우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운동을 하다 보면 안전하게만, 할 수 있는 만큼만 나 자신을 한정시키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만들어 놓은 틀에 안착해 더 이상 근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루틴을 깰 때 비로소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비단 운동만 그럴까


어느 순간 나는 재미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들, 적당히 내 시간을 뺏기지 않을 만큼만 투자하는 일들,

안전하고 큰 도전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로 나 자신을 한정시켜 놓았다.


가슴 뛰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의 부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 남과의 비교 속에 느끼는 자조감 등으로 피어났다


돌이켜보면 오늘에 오기까지 숨 막히는 도전들이 있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에 뛰어들고, 괜히 일을 벌여 가슴 뛰는 욕심도 부리며

성취라는 기쁨과 실패의 부끄러움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무언가 몰두할 때는 잡생각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부끄러워졌다


나는 어느 순간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이다.

처참히 깨질까 봐, 밑바닥이 드러날까 봐 할 수 있는 일만 골라 점점 나이를 먹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때 비로소 발전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인의 이별통보에도, 3년간의 입시 실패에도, 남들의 비웃음 뒤에도

부끄러움은 나를 다른 일로 이끌었다.

부끄러워야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작게 보았던 나만의 운동 루틴에서

오랜만에 삶의 활기를 찾았다.


하루하루 나만의 작은 도전을 만들어 가는 것,

끊임없이 금단의 경계에 발을 디뎌 보는 것,

그때의 감정으로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열심히 부끄러울 일들을 벌려보는 것.



나는 쇳덩이를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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