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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Sep 01. 2022

'살아있기'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생존'앞에 모든 건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부끄러움에 산을 오른 적이 있다.


정확히는 그저 산에다 몸을 던지고 싶었다

모멸감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에 대한 한탄에

그냥 생각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땅바닥만 쳐다본 채

이 산이 끝나길 바라며 올라가는 것 뿐이었다


도봉산은 참으로 험준했다.

정상처럼 보였던 마당바위는

산기슭에 지나지 않았고

깎여나갈듯한 경사에

손은 나무를 잡아야 했으며

그만 들고 있던 물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물통의 머리가 깨졌을 때

그때가 쉬는시간임을 직감했다.


잠시 내려다 보았다.

내가 지내다 올라온 저 밑의 땅세계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작은 그릇같아 보였다.

너무 좁은 그릇이라 그런걸까

저 작은 세계안에서 남들과 다른 자신을 뽐내기 위해 지독하게 편을 가르고

종을 구분하여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난 그 차별성에 찔려 여기까지 올라왔나 싶었다

학생은 장학관에 들어와선 안되는 건데

자신의 실수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감의 말은 그 동안 이 집단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했던

나의 땀과 존재가치를 한순간에 소멸시켰다.


행정오류로 태어난 나는 조용히 숨만 쉬다가 3개월 뒤 사라져야 하는 운명을 자각했다.

'사생아의 운명은 참으로 야속하지'

나는 산의 중턱에서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안으로 삭혔다.


다시 일어나 정상을 쳐다보았다

이젠 흙도 없이 쇠꼬챙이만 바위에 차갑게 박혀있었다

발이 아닌 손으로 산을 타야 하는 차례,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있는 힘껏 손을 뻗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미끄러질 듯한 바위에, 추락을 기다리는 바람이 등을 떠민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손은 살아보고자 쇳줄을 잡았다.

차가운 악수는 뼈 마디마디가 시렸지만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하는 손의 의지와 살겠다는 생존본능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뼘씩 한뼘씩 버티고 내딛다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바람만 스쳐지나가는 고요에 절경은 그저 홀로 앉아

세상살이 그득한 종지그릇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난 그 옆에 앉아 같이 고독을 느끼고 싶었다

말없이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다.

외로움, 운명과 같은 삶의 속성을 생각하다

문득 차분해진 내 숨소리를 느꼈다.


잦아든 숨소리와 비워진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차올랐다.

해방감 내지 덧없음,

살아숨쉬기에 슬퍼할 수 있고

툴툴 털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생기가

안에서 피어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누구나 우연히 태어나 삶을 시작하지만 끝은 자신이 맺을 수 있다는 걸,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아픔을 감수하고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걸,


신선대 정상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그토록 나를 정상에서 밀어내고자 노력했던

바람과 바위는 한낱 자연현상에 불과했다


나는 작은 불씨를 마음속에 꼭 간직한 채 산을 내려왔다.


1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쌍문에 살지 않지만

나는 도봉산을 보러 이젠 안산에 올라간다.


도봉산, 나의 부끄러움으로 봉우리가 하얗게 서려있는 산.


어쩌면 나는 도봉산을 마주하기 위해 안산에 올라가는지도 모르겠다.

늘 올라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산,

마주할때마다 나의 아픈 추억을 되새기는 곳,

과거의 내가 봉우리에서 울부짖던 곳,

내가 나를 찾아낸 곳.


개망신을 당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지린내 나는 철둑길을 따라서
개망초꽃들이 피어 있다

- 최승호 <개망초꽃> -


과거의 내가 묻혀 있는 도봉산과 조우할때면

마음속 작은 불씨는 다시금 화력을 되찾는다.



나는 살아있다
그래서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생존앞에 바람과 바위는 그저 자연현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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