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by 연필로쓴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읽고 내 머릿속엔 ‘돌층계’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기억을 되짚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김남조 시인의 「설일」이란 시에서 내 머릿속에 맴돈 시의 한 구절을 찾아냈다.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은 은총의 돌층계 칠십 번째 계단 그 어디쯤을 지나고 있다.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씨앗 되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고 매장의 화재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려 했던 두려움을 극복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은총의 돌층계, 처음 그 앞에 섰을 때 밀가루 두 포대와 마음속 깊은 곳에 성심이란 말 한마디 새겼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잠시 뒤를 돌아 지나 온 계단들을 뒤돌아보니 감개무량하다. 튀김소보로, 포장 빙수로 승승장구하며 날아오르듯 신나는 발걸음으로 올라갔던 시절, 동생과의 갈등, 화재사건을 겪으며 고단하게 터벅터벅 올라갔던 시절도 있었다. 마음속에 성심이란 말 한마디 깊이 새기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올라갔다.



내가 언제부터 ‘성심당’이란 빵집을 알게 됐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옛날 사진 속에 성심당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때 생일파티 속 사진에서 발견한 빨간색 박스 위에 놓인 케이크, 어린 시절 생일 파티 속 사진엔 늘 당연한 듯 성심당 케이크가 있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스무 살 청년이 되어선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고백하기 위해 화이트데이에 성심당을 찾아 ‘어떤 사탕을 살까?’ 설레는 고민을 했던 기억과 그 시절 은행동을 내 집 들락거리듯 다니며 단골 코스로 성심당에 들러 시식을 했던 기억들도 있다. 그리고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인 지금의 와이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프러포즈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성심당 케이크가 자리를 빛내 주었다.


대전이 고향인 사람들에겐 나와 비슷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빵으로 어떤 즐거움을 어떻게 선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치아가 약해서 딱딱한 것을 못 드시는 할머니에게 '휴지빵'으로 새롭게 작명된 ‘첫눈’, 장난꾸러기 조카들에게 '딱딱이빵'이라고 불리는 ‘노아레즌’, 담배를 끊고 단 간식이 필요한 아버지에게도 인기 만점인 ‘보문산 메아리’, 다이어트해야 한다면서 초콜릿 듬쁙한 ‘카카오순정’을 다 먹고 나서 후회하는 우리 예쁜 와이프 입맛도 좋아하는 이유도 다 다르지만 꼭 ‘성심당’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성심’이라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동생의 성심당 프랜차이즈 사업은 동생에게 많은 양보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의 좋았던 형제 사이에 갈등의 시작점이 됐다. 동생의 프랜차이즈 사업 시작으로 성심당은 현재의 성심당 대표인 임영진 대표가 운영하는 개인사업자 성심당과 동생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성심당 둘로 나뉘게 된다. 그 시점에 대전의 원도심은 빠르게 쇠퇴해간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지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는 쉽지 않다.


동생이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성심당의 부도 뒤처리는 고스란히 개인사업자 성심당의 몫으로 돌아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매장에 화제가 발생하여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잘 나갔던 성심당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성심당이 대전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노점으로 처음 시작할 그 당시엔 한국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가난했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그간 애써 이뤄놓은 많은 것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매장의 화재로 많은 것을 잃고 불탈 때의 심정은 정말 두렵고 절망적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도 밀가루 2포대뿐이었다. 그리고 창업이래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직원들이 함께 있었다.


'설일' 시에서 나온 한 구절처럼 위기의 성심당엔 직원들이 함께 있었다. 직원들의 사랑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큰 힘을 주었다. 누구에게든 제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결코 혼자는 아니다. 자기 스스로 혼자라고 느꼈을 뿐 분명 혼자는 아니었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아니다.

나도 아니다.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주지 않던가...」


사랑이란 말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다. 갈등을 겪었던 동생과의 화해 그리고 용서... 사랑이는 말에는 이성 간의 사랑, 존중과 배려, 그리고 진정한 용서, 그런 가치들이 담겨있다. 성심이란 이름 속에는 사랑이란 가치를 담았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에서 전국에서 유명한 빵집이 되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백 번째 계단 이백 번째 계단을 지날 때도 그때도 성심당은 은총의 돌층계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은총을 받기 위해 베푼 사랑은 아니었다. 성심당을 처음 창업할 때 창업주 임길순 회장은 한국전쟁이란 격동의 시대를 겪으며 죽을 고비들도 넘기고 새롭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새로 사는 인생은 어쩌면 덤이고 덤으로 사는 것이라면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고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란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그 마음이 오랜 시간 동안 변치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사랑을 나누고 그 마음이 변치 않다 보니 사랑을 받게 되었다.



‘모든 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은행동 154번지 빵집의 사훈이다. 처음 시작할 때도 지금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다리는 더 튼튼해지고, 어깨 또한 더 무거워짐을 느낀다. 훈장 같은 단단한 굳은살이 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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