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10_2019년 10월 25일
삼십대가 되어서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부분이 있다. 내 인생의 선택지가 정해진 몇가지 여정으로 압축되었다는 점이다. 꿈을 향해 가는 입장에서 혼란스럽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그 길 조차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선택지가 몇 개 없다는 점이 씁쓸하고 두렵다.
작가가 꿈이니, 작가로 성공하는 것이 첫 번째 길이다. 앞으로 3년 안에 입봉을 하고 그 이후에 성공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성공하지 못한 작가가 된다. 글쓰기를 놓을 수 없다면 겸업을 하게 될 것이다. 사이드잡은 당연히 강사다. 입봉을 했으니 시나리오 강의를 하게 될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술이나 국어 강의를 할지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은 입봉하지 못하고 3년 안에 작가의 길을 그만둔 후 그냥 학원강사로 남는 경우다. 노후 대비의 측면에서 학원을 차리는 방법도 있겠으나, 학원 원장이 나와 잘 맞는 옷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학원 강사로의 길도 암담하긴 매한가지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던 나는 한 달 전에 신박한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지망생이 공인중개사시험을 친다는 것이다. 노후대비를 위한 것이라며 시험 준비로 한동한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정해져 있는 길을 벗어나는 방법이 그것이겠다고. 며칠을 ‘공인중개사 시험이라, 신박하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준비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방향성에 대한 신선함 감정 정도를 느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글쓰기 아르바이트에서 잘리면서 비슷한 임금에 그런 류의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 교육원 취업게시판에 들어갔다. 주로 보조작가 모집 공고나 방송작가 모집 공고가 올라오지만, 간혹 가벼운 아르바이트의 구인 공고도 올라오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사보기자 모집 공고를 보았다. 창작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에 공고에 쓰인 에세이를 써서 보냈고, 결국 일을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는 않다. 평생 안 해 본 일이고, 내가 할 거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일이다. 내 이름 뒤에 ‘기자’라는 단어를 붙는 것도 어색하다. ‘기사체’라는 것도 생소하다. 취재현장에선 극도로 긴장해서 위가 안 움직이는 신체 증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밑지는 장사인지 따지며 시간당 페이 딱딱 계산해가며 글 쓰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재고 따지던 그런 짓을 하지 않게 된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아니라면, 우선 이곳에서 안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론이 어떻든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질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적어도 공인 중개사 시험보단 나다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11월부터 나의 선생이시기도 한 영화시나리오 작가님과의 팀 작업도 다시 시작된다. 금전적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하겠지만. 11월까진 꼼짝없이 이렇게 지내야 할 것 같다. 뭔가 다시 시작되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할 것들을 마무리하고, 시작되고 있는 것들에 안착하는 것이 2019년의 좋은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서른여섯. 의외의 새로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