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

방황의 가치12_2014년 5월 26일

by 오랜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면 자신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폭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다. 부산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 게스트하우스 4인실을 단둘이서 쓰던 여행객과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여행 3일 동안 밤마다 매일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 유일하게 통성명을 했던 분이다. 그녀는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유학까지 마치고 늦은 나이에 회사에 입사한 그녀는 자신보다 어린 상사의 질투 어린 등살을 피해서 제주 여행을 온 것이다.


그녀는 내게 유학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나름 성공적으로 유학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들이 외국이라는 환경 속 자유에 도취 되어 노는 동안 자신은 그저 공부만 했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천성. 그래서 환경이 바뀌어도 천성은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일주일에 한번 기차를 타고 서울로 공부하러 다녔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온 나는 나름 새로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 그 분의 말에 공감이 갔다. 내 경우엔 긍정적인 이유에서의 공감은 아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서울이라는 새로운 공간까지 가는 이례적인 용기를 냈으나, 과묵한 내 천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나를 어필할 기회를 놓쳤다.


이번 주말 내내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와 내 주변에 대해 생각했다. 결론은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런 시점에 이젠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와의 대화가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변할 수 없다는 한정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유학까지 마쳤다는 그 분처럼 나 또한 나다운 방법으로 뭔가 바꿔보고 싶다는 의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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