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방황의 가치26_2017.12.5

by 오랜

“그야, 작가님이 중간에 다른 일을 하셔서 그런 거죠 뭐.”


2014년 12월 즈음. 내가 무심코 뱉었던 말이다. 두분 작가님이 공동으로 집필하는 드라마의 보조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작가님들은 데뷔한 지는 오래되었으나, 별다른 대표작이 없었다. 자연히 연출을 맡은 감독과의 힘겨루기에서도 늘 을이었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작업실에선 거의 매일 술판이 벌어졌다. 그 분들은 그때마다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보조작가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라마 판이 이런 곳인가 심란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은 결국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어서 중간에 다른 일을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점이 참 아쉬웠다. 긴 무명 생활을 견디다가 우연히 편성된 한 작품이 대박이 나 반열에 오르신 모 작가님의 “달리 갈 길이 없어서 이 길에서 버텼다.”라는 말이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생각했던 즈음이라 더욱 그랬나보다.




“인생이란건 비교적 공평한 것 같아요.”


당시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작가님들은 인생이 공평하다면 자신들은 왜 지금까지 이러고 살고 있냐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저렇게 말을 했다. 당신들이 중간이 드라마계를 떠난 업보를 받는 거라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면에선 나는 참 예의 없는 인간이다.


나의 저런 확고한 믿음은 어디서 나왔을까. 삽십년 남짓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직접적인 ‘불공정’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야기 문학의 ‘개연성’을 인생에 너무 쉽게 적용한 탓일까.


어떻게 인생의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납득하려고만 했을까. 인생이라는 광할한 시간과 공간을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이야기의 틀안에 넣고 생각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오만이자 오판이다. 4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던 나이든 두 작가는 새파란 보조작가의 섣부른 인생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 말 이후 별달리 언쟁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저 어이가 없어서 그저 그렇게 넘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역사에 속 죄없는 죽음들에 나는 곧잘 분개한다. 국가가 공권력이 왜 나를 죽이려 드는지도 몰랐던 제주 4.3사건이나 5.18광주의 피해자들. 그들의 죽음은 ‘시대’라는 개연성의 틀 안에서는 논리적일 수 있으나, 각자 개인사의 틀 안에서는 개연성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살해당할만한 일을 한 적잉 없으므로.


나를 분개하는 죽음이 오랜 역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5년 11월 어느 토요일 희생된 60대 농민 백남기씨의 일도 그렇다. 그날 나는 누군가 결혼이라는 생의 전환점 사기 위해 수백을 낸 웨딩홀에서 일당 6만원을 받고 거의 9시간 가까운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삶을 이유로 거리에 나왔던 백남기씨의 인생이 다른 의미로 전환점을 맞았다. 이런 불공정을 개연성의 논리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인생은 개연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인생만 들여다 봐도 그렇다. 다섯 개의 드라마의 보조작가를 했고, 해마다 적어도 두 개의 공모전에 낼 습작을 썼다. 게으름이라는 걸 피울 줄 몰랐던 나는 여전히 작가가 되지 못해 얼마전 논술강사로 취직했다.


물론 강사로 열심히 일했다. 나의 천성적으로 ‘물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내 열심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용하는 것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나는 논술강사로 일한 3개월간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점점 할 일이 늘어났다. 3을 해내면 4를 원했고, 4를 해내면 5를 원했나. 그러나 직급이나 급여는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결국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던 사람인가 떠오르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퇴사했다. 오늘 백수로 딱 이틀째다.


여전히 글은 쓰지만 앞으로도 이런 나의 이중생활은 계속될 예정이다. 훗날 내가 드라마작가의 일을 시작하고 보조작가가 생기게 될 날이 올까? 그런 날, 나를 닮은 당돌한 보조작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작가님은 늘 겸업하셨잖아요.”


훗. 개연성의 틀안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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