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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Aug 26. 2021

선생님의 흰머리

방황의 가치 39_ 2010년 6월 25일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맞은편에 누군가 걸어온다. 나는 긴장할 얼굴로 맞은편 사람을 본다. 낯이 익다.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몇 번 마주친 적도 있다. 하지만 인사를 한 적은 없다. 수학 선생님이시긴 했지만 나는 문과반이었고 선생님은 주로 이과반에서 수업하셨다. 0교시 보충 수업 시간에는 문과반 수업을 하러 오셨는데, 수1 수업이라 예체능 지망인 나는 당당히 잠을 잤다. 예체능 지망은 공통수학만을 수능에서 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학생 주임 스타일의 선생님이셨지만 우리는 "미친 개" "독사" 같은 류의 별명을 붙이진 않았다. 사실 선생님 성함 세 글자면 충분했다. 교정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여고생들이 멀리서 "ooo다!" 선생님 성함 세 글자가 들려오면 미친 듯이 도망쳤다. 마치 불빛에 흩어지는 바퀴벌레처럼 삽시간에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선생님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신다. 여전한 모습에 신기해하며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그냥 지나치려는데 문득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이 보인다. 어느새... 언제 이렇게 늙으셨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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