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론적 자연관과 도구적 이성

220715_철학 입문자의 NOTE

by 오랜

‘기계론적 자연관’이란 자연을 기계로 보는 입장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각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다르게 변해왔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이렇게 바뀌었다. 이는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계를 설명하는 데에 끌어들이는 개념들 이외의 것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전제되는 것이 ‘결정론’이다. 기계에 우연이 들어가면 곤란하기 때문에 자연이 기계처럼 일정한 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결정론적 존재라는 의미다.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의 저작 <계몽의 변증법>에 따르면 초기에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연을 지배해야만 했다. 지배는 점점 강화되었다. 그럴수록 인간은 덜 불안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이 두 가지 시선은 인류의 근대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선 기계론적 자연관의 경우다.





“이제 자연은 어차피 기계니까 어떤 결론이 나옵니까? 자연은 위대하고 신성한 것이 아니라 조작 가능한 무엇, 인간이 편의를 위해 사용할 수 있고 변형시킬 수 있는 무엇이 됩니다. 필요하면 나무도 베고, 강도 막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런 테크놀로지가 현실화되려면 19세기가 되어야 하지만, 자연을 기계로 보는 생각이 확립되어 쓸 때 이미 잠재적으로 현대 문명의 밑그림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결론이 나오죠. 사람 몸도 기계고 동물도 기계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이나 동식물도 기계처럼 연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해부학이 본격화됩니다.” (<개념-뿌리들> p119, 이정우, 그린비)


기계론적 자연관은 자연을 경시하는 가치관으로 이어졌다. 자연을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자, 자연의 일부인 인간 또한 그런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로 인해 해부학이 발달한다.


이 부분을 배울 때 역사 속에 기록된 무수한 생체실험의 역사가 떠올라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주로 기계론적 자연관을 만들어낸 서양의 백인을 기준으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흑인이나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대인, 보편적 사회적 약자로 볼 수 있는 죄수, 고아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용되었다. 식민지 조선인 또한 일제에 의해 생체실험에 동원되지 않았는가. 이 내용은 <개념-뿌리들>의 강독 수업 내용 중 꽤 인상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관념적인 철학의 개념들이 역사로 이어진 구체적인 사례가 등장할 때가 흥미롭다.





아람문예아카데미의 장의준 선생님 철학 수업은 한 분기를 넘겨 요즘 ‘전쟁과 평화’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나, 피부로 와닿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커리큘럼에 있는 무수한 철학자들의 이름에 끌려 듣기 시작했다. 거기서 언급되는 내용이 <계몽의 변증법>이다.


<계몽의 변증법>을 쓴 두 철학자는 이 책을 통해서 왜 인류가 참으로 인간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파시즘적 폭력이라는 새로운 야만의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그와 관련해 주요하게 언급되는 개념이 ‘도구적 이성’이다.


도구적 이성이란 설정된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최선의 수단과 방법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성이다. 도구적 이성은 대상을 효율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목적-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붙잡혀있다. 자연, 개인, 사회 모두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는데 종국에 이것은 ‘파시즘’과 연결된다.


앞에서 언급한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생각이 이와 연결된다. 자연을 보다 단단하게 지배하려는 필요성(목표)에 의해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규칙, 법률, 도덕 등의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사회적 약속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지배하여 욕구를 억압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파시즘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파시즘 또한 인류 역사에 수많은 사건과 비극을 만들어낸 가치관이 아닌가 싶다.





이 두 철학적 개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은 참으로 오만하고 어리석다. 자연을 발 아래에 두려한 그 욕구의 칼날이 결국 인간 자신에게 향할 것을 몰랐을까.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왜 자각하지 못했을까.


철학이 이토록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 지금까지 철학과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의아해진다.



* 강의 인용

[철학의 주요 개념들 - 철학입문]

(2022년 3월 7일~5월 23일 / 고양아람누리 문예아카데미 / 강사 : 장의준)

[전쟁과 평화에 관한 철학·미학적 조망 : 관점 바꾸기]

(2022년 6월 20일~7월 25일 / 고양아람누리 문예아카데미 / 강사 : 장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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