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5_철학 입문자의 NOTE
요즈음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 중 일부의 키워드이다. 그 외 다른 설정들도 덧붙여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이미 어느 정도 갖추어 놓은 이야기를 전면 수정 중이라 고민이 깊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째 한발 한발 작은 진전이라도 있으면 만족하는 중이다. 그만큼 진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철학 수업 때 배웠던 ‘호모사케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호모사케르란, 고대 로마 시대에 법으로 규정한 특정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누군가 죽여도 벌받지 않는 존재. 말하자면 법이 보호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심지어 제물로 바칠 수도 없을 만큼 가치 없는 것들로 치부된다. 처음부터 관심이 갔다. 흥미롭다기 보다는 불편해서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어느 시대이건 배제된 사람들의 존재는 불편하고 안쓰럽다.
고대 로마가 어떤 사람들을 호모사케르라고 규정했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 질문을 했다. 강사께서는 이렇게 답해주셨다.
“호모 사케르는 특정한 행동을 할 경우 법에 의해 부여받게 되는 지위였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법에 의하면, 맹세를 어길 경우, 후원자가 고객을 속일 경우 호모 사케르의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법적으로 예외 상태에 안에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저서에 언급된 내용이다. 같은 저서에서 아감벤은 유대인 수용소의 이야기를 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난히 호모 사케르적인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을 ‘무젤만’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존엄, 자율성, 정체성 등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박탈 당한 채 헐벗은 상태로 살아갔다. 이런 상태를 아감벤은 ‘조에’와 ‘비오스’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스어로 조에는 육제적인 삶, 비오스는 사회적, 정치적인 삶을 뜻한다. 무젤만은 조에만 남은 상태다. 호모 사케르 또한 그러하다.
사회가 발전하여 적어도 법적으로 호모사케르를 지정하진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호모 사케르가 더 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조르조 아감벤은 근대 사회에 호모 사케르와 같은 예외 상태가 규칙이 되고, 일상화되어 호모 사케르가 재등장했다고 말한다. 근대 주권의 지배 대상인 헐벗은 삶에서 나타나는 호모 사케르의 상태는 개인에게 적용된 법의 중단이다. 근대 주권은 이들을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배제시킨다.
‘빨갱이’라 낙인 찍히면 호모사케르의 상태가 되는 시대가 있었다. 그들이 실제로 낙인찍힐만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찍히면 끝. 그들은 쫓기고, 잡혀가, 고문 당하고, 자백을 강요당한다. 그러는 과정에 그들의 인권은 사라진다. 그러다 풀려나도 다시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그때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 모든 일들을 당시의 사회는 두고 보았다. 아니 어쩌면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80년대 이전의 시대의 이야기이다. 한동안 그런 일들은 그때로 끝이 난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그런 상황을 목도해왔다. 낙인 찍어 정치적으로 배제한 다음 그들의 탓을 한다. 사상이 불순하다, 이기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사회적으로 프레임을 씌우면 끝이다. 그렇게 배제되고 나면 이제 누구나 비난해도 되는 사람이 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도 한 순간이다.
현대 사회의 호모사케르 사례를 나열하자면 꽤 긴 지면을 할애해야겠지만, 굳이 그럴 것도 없다. 피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기자들의 집중 포화 당하는 경우는 어떤가?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언론이 만든 호모 사케르를 만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과거의 야만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야만은 형태와 모습을 달리해 더 교묘하게 우리의 사회 속에 남아 있었다. 30대가 되고난 후 그것을 깨달았다. (아감벤은 이것을 '생체권력'의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배제된 사람들.
극 속에 어떤 호모사케르를 등장시킬지 나의 고민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강의 인용
[전쟁과 평화에 관한 철학·미학적 조망 : 관점 바꾸기]
(2022년 6월 20일~7월 25일 / 고양아람누리 문예아카데미 / 강사 : 장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