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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Aug 22. 2022

매미 소리

 220805_방황의 가치53

모교인 고등학교에 나무가 참 많았다. 산기슭에 있었던 나의 학교는 교문에서 넓게 난 길로 가면 운동장 거기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본관이 있었다. 본관옆으로 난 오르막 길을 오르면 학년동 세 개가 나란히 보였고, 그곳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운동장과 체육관, 왼쪽엔 실습실이나 특별실들이 있는 다른 건물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모교를 좋아했다. 초봄 목련과 매화가 피었다지면, 흐드러지는 벚꽃 터널이 만들어졌고, 여름엔 학교 뒤편 대숲이, 가을엔 교정에 켜켜이 쌓이는 낙엽이 아름다운 곳이었으니까. 건물 간 사이 공간이 친구들끼리의 은밀한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우린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교정을 몸으로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건 ‘여름의 벚나무길’이다. 벚꽃이 피었다 지고 나면 버찌 열매가 익어 떨어지고, 우거진 녹음에 귀를 찢을 듯한 매미소리가 들린다. 매미 소리는 샤워기에 틀어 놓은 물처럼 시원했다. 더위가 싹 가시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때론 걸어가다 멈춰섰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매미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검고 커다란 몸뚱이에 넓적한 날개가 달린 그것을 30대가 되어서야 보았다. 80년대인지 70년대인지에 지어진, 아무튼 낡디 낡은 집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벌레 노이로제가 생긴 후였다. 길 가다 떨어져 죽은 매미가 내 발에 차여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떠는 것을 보았다. 순간 밤 중에 귀가하다가 본 자취방 창문에 붙어 있던 벌레 그림자가 매미라는 걸 깨달았다. 여러명이 함께 지내는 셰어하우스라 비명소리를 삼키며 다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왔던 기억. 그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매미를 혐오한다. 매미 소리 또한 혐오한다.     

낡디 낡았던 그 셰어하우스와 그보다는 조금 덜 낡은 지금 사는 이 집. 내가 고른 집들의 특징은 초록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모교에서의 추억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계절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곳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름이 고역이다. 매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것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소름이 끼친다. 그것애 내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체를 눈으로 보고 경계하게 된 것이 매미뿐인가? 어느 날 매미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던 중,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고 드라마를 쓰겠다던 시절이 떠올랐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던 시절이 있다. 심지어 서사 문학 중에서도 극작을 택한 이유도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물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속 깊은 곳까지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은 상대에 대해 굳이 다 알고 싶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나 또한 상대에게 모두 내보이고 싶지 않을 때도 물론 있다. 


이 글을 쓰는 여름밤 멀리서 매미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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