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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Aug 22. 2022

220818_방황의 가치54

1.


“넌 공감을 해달라고 말을 하면 팩트체크를 해.”    

 

대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바뀐 정권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의견이 잘 맞다는 이유로 자주 단톡을 통해서 정치 뉴스를 공유하며 사담을 나누던, 거의 20년 즈음을 만난 지인이 내게 저런 말을 했다. 토요일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며 노가리 까듯 카톡을 하고있었다. 그가 한 말에 대해 내 의견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세종대왕은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했으니 진보다, 라고) 그것이 왜 팩트 체크가 되었나보다 그 다음 말이 더 그랬다.     


“니 주변에 어떻게 자기애적 성향들이 많은지 모르겠어. 그들은 공감을 원하는데, 넌 공감을 못하잖아.”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자기애적 성향들이 많아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였다. 나는 내 MBTI 끝자리가 ‘TJ’로 끝나는 것을 말하며, 그래서 그런가?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그녀와 나의 말하는 법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이렇게 앞으로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지내자며 쿨한 척도 했다.     


그러나 두 번째 말을 계속 곱씹게 된다. 공감해달라는 말에, 더 정확히 말해서 정치적으로 반대인 상대 당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어떤 짓을 해도 그 당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그 말에 맞장구치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보통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하지 않나? 나를 소시오패스라고 말한 건가? 한동안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개인적으론 연락하지 않는다. 단톡에서만 아는 척할 뿐이다.           



2. 


뒤늦게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방영 당시 꽤 화제가 된 작품이긴 하나 내가 쓰고 있는 공모 응모용 드라마와 톤이 너무 안 맞아서 방해가 될까 보지 않던 것이다. 자금도 사실 같은 드라마를 쓰고 있긴 한데, 그래도 조금 짬이 난 김에 밀린 것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하다가 함께 보고 있다.   

   

당시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지인이 <나의 해방일지>를 두고 ‘작가님께서 너무 마음대로 쓰셨다’라고 평했다. 1회부터 4회까지를 보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신인이 해방일지처럼 쓴다면 편성이 되니가 할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16부작 시리즈 드라마의 법칙에 맞지 않는 낯선 분위기의 드라마이다. 상업적인 극문학에서 잘 쓰지 않는 아주 내밀한 인간의 감정에 대한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갈등 양상이 뚜렷해지지만 아주 극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드라마이다.      


내 취향에는 때론 너무 설명적이라 참고 보고 있기가 힘든 부분도 있다, 그것의 반동으로 극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캐릭터가 과잉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왜 이 드라마에 열광했을까? 나는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아주 내밀한 곳에 있는 감정을 끌어내 보여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도 충만하게 채워진 적이 없다는 거. 때론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거. 우리 모두가 욕망하는 것은 어쩌면 해방이라는 거.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성공하고 싶은 것도 어쩌면 내 현실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는 것.           



1.


“힘든 일이 있을 때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은 진솔하게 들어줘요. 적어도 뒤에서 딴 생각은 안하겠구나 싶은 사람이에요.”     


20여년 지기에게 소시오패스라는 소리를 듣고 몇 달이 지난 후 같은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전화만 걸면 몇시간씩 전화를 끊지 않는 사람이다. 나도 수다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게 처음엔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전화만 걸면 자기 힘들었던 이야길 길게 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익숙한 패턴이다. 조금 들어준다 싶으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생리통 때문에 힘들다고 전화를 걸기도 한다.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낙점한 것이다. 그 중 몇몇은 지금 일부러 연락을 받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 분은 어떻게 될까? 잦아지면 끊어낼 생각이라서 지켜보는 중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긴 이야길 다 진솔하게 들어 준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내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계속 말을 한다. 안 듣는 건 아니다. 해야할 적절한 리액션도 한다. 위로도 하고, 같이 화를 내주기도 하고, 업무에 관한 것은 나름의 대안도 제시한다. 사실 들은 말을 기억하고 다음에 그 사람이냐? 묻기도 한다.      


사실 20여년 지기 지인과 나는 만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수다 떠는 데에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대체로 지인이 먼저 말을 꺼낸다. 그 사이 있었던 나쁜 일들, 여행 갔다온 자랑 섞힌 이야기들. 처음엔 나쁜 일이 있으면 같이 욕하고, 여행 다녀온 이야길 들으면 부러워하고 즐거워도 했다. 사실 20여년을 거의 그런 식의 수다를 떨었다. 학원 강사 동료와의 대화처럼.     


문제는 20여년이라는 데에 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그후 대학을 두 번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꿈을 위한 글쓰기와 병행을 했다. 드라마 보조작가를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서 수도권에 터를 잡고 혼자서 거의 모든 것들을 해내며 살았다. 그 사이 나는 변했다. 애쓰지 않아도 공감이 되던 지인의 감정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된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저런 것으로 상처받고 바를 내는가? 저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여전히 갈망하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20대 후반이었다. 대학도 마치고 직장 생활도 어느 정도 한 이후였다. 꿈을 위해 서울에 가서 만화를 그렸고, 문하생 생활도 한 후였다. 이미 모든 것이 고착될대로 고착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후 20년간 그녀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 차이 때문에 우린 서로 잘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팩트체크라고 말한 것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나의 표현 방법이다. 감정을 섞어서 던지면 논리로 받아 치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고 팩트체크를 한다고 느낀 것 같다. 하지만 20여년간 그러했는가? 기나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지난 시간에 회의가 들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무조건 맞다고 해주길 원한다. 하지만 무조건은 어렵다.      


학원 동료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난 제대로 봤다. 뒤에서 딴생각은 안 한다는 거. 나는 거짓말이 쉽지 않은 타입이다.          



2. 


올 초에 쓰다가 멈춘 드라마가 있다. 쓰다가 포기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대안이 될만한 다른 아이템이 떠올라 바꾸게 되었다. 쓰다가 멈춘 드라마는 사건이 아닌 감정 위주로 구성되는 드라마였다. 이례적으로 초반 회차에 내레이션도 쓰고, 캐릭터 소개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보려 했었다. 그런데 막상 대본에 들어가니 분량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인물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 간혹 주인공들이 상황과 별로 맞지 않는 대사를 한다. 불쑥 왜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말. 주로 내밀한 자신의 감정에 대한 말이다. 때론 장면과 이어져서 그런 장면이 시퀀스를 구성할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장면을 유심히 본다. 왜 작가는 저런 대사를 저렇게 내뱉게 할까.      


문득 내가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일에 소홀했음을 깨닫는다. 20대 땐 어떤 것이건 깊이 생각해 내 나름의 규정을 만들어 놓곤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사실 20년 지기의 팩트체크한다는 말에 MBTI 유형 같은 것을 꺼낸 것 자체가 그런 이유에서다. 내가 어떻게 말하는 사람인지, 소시오패스라는 소릴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스프링노트를 하나 샀다. 집에 떡제본된 더 좋은 새 노트들이 많이 있지만, 들고 다니면서 쓰기엔 스프링 노트가 제격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이런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끄적였다. 쓸데없는 메모들. 아이디어들. 때론 낙서 같은 것들을 두서 없이 써나갔다. 그때 가장 많은 생각들이 터져 나왔다.     

올해 외부적인 이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년에 극본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이젠 극본 쓰는 일을 그만둘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글쓰는 일을 완전히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내 글쓰기가 어디로 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취미가 될지 직업이 될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될지. 그러나 적어도 나를 알아가는 일을 그만두지는 말아야겠다. 그래서 노트를 샀다. 노트가 내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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