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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Sep 06. 2022

저 지금 내려요

방황의 가치 20220905


    

“하차벨이 고장 났으니 내리실 분은 미리 알려주세요.”     


퇴근 버스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토요일 10시 가까운 시간에 탄 버스이기 떄문에 흔히 상상하는 퇴근길 만원 버스는 아니었다. 나는 언뜻 무슨 소린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차벨이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누군가 눌러놓았다는 소리다. 그때 한 승객이 “내립니다!” 한다.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한 후 문이 열리고 그 승객이 내린다. 그러나 하차벨 불빛은 그대로 들어와 있었다. 버스의 문이 열렸다 닫히면 저절로 불빛이 꺼져야 하는데 그 시스템이 고장나 버린 것이다. 상황을 파악할 때쯤 다른 여자 승객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속삭이듯 말한다.      


 “아저씨, 저 여기서 내릴게요.”      


얼마 후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 여자 승객이 내렸다.      


그날 약 20분간 그 버스를 타고 가면서 느낀 것이 있다. ‘내린다’라는 짧은 의사 표현도 참 사람마다 다르게  하는구나. 누군가는 큰소리로 누군가는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내립니다. 내릴게요. 저 내릴게요. 하는 말도 행동도 각양각색이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똑같은 말로, 예를 들어 “내릴게요.”라고 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게’에 악센트를 주어 발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악센트 없이 물 흐르듯이 발음하기도 한다. 목소리는 또 어떤가, 논 코 입 비슷한 자리에 붙어 있지만 그 생김새와 조화가 조금씩 다르듯 목소리 또한 미묘하게 다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 아는 사람도 분간하지 어려운 요즘 같은 세상에 하차벨이 고장난 해프닝이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한다 싶었다. 가려 놓았던 각자의 개성이 짧은 한마디에 터져 나온다고 해야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오래전에 알던 사람이 지금 이 버스에서 내린다면, 내린다는 의사 표시 그 짧은 문장으로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마스크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얼마 후 내가 내릴 차례가 되었다. 은근히 고민이 됐다. 내립니다. 저 내리겠습니다. 내릴게요. 내려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 앗, 지금 빨리 말해야겠다 싶은 타이밍!     


“내릴게요!”     


준비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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