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6_2009년 9월 18일
졸업 후 서울로 취직했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산에 있으니 한번 보자는 것이다. 나는 부산에 잠깐 쉬러 왔나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있을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예 내려왔으니 편할 때 보자고 했다.
"그래, 딱 먹고 살고만 있지."
서울에서 만났을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먹고 살고만 있다니. 세상이 먹고 살기 좋아졌다고들 하는데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가 만만하지 않구나, 생각했었다.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잘 왔다고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잘 왔어."라고 하자니 마치 축하하는 것처럼 들릴까 걱정이 됐다. 고심 끝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진 몰라도 잘 왔어."라고 했다. 그러나 이내 그 문자를 보낸 것을 후회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꼭 무슨 사정이 있었으면 한다는 투 같기도 하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사회에 나가 적응을 시작하고 있다. 나도 올해 다시 사회에 나와 두번째 적응기를 갖고 있다.
갓난아기 때의 우리는 그저 숨 쉬고 먹고 싸는 존재.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도 비슷했다. 학생이라는 신분이었고, 가능한지 어떨지 모를 꿈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입학한 대학의 레벨과 전공의 차이 정도로 설명되지 않는 무수히 다양한 갈래의 길로 흩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린 날 빛깔은 달랐으나 모두 찬란했던 꿈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허망함을 느낄 때가 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친구는 집안의 반대로 디자인고를 가지 못해 인생이 꼬였다고 말한다. 단지 그림이 좋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회사로 들어간 친구는 직장이 전부인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불어과에 들어갔던 친구는 불어를 무척이나 싫어해서 지금은 사진을 찍겠다고 말한다.
만화가 인생에 전부라 말하던 나는 이제 드라마로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 다짐한다.
곧 돌아온 그 친구의 손을 잡아주러 가야겠다. 그저 같이 술 한잔 기울이며 그녀의 이야길 들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