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것은
필시 우리 모두에게
‘진지한 즐거움’을 안겨다줄 것이다.
- 강수돌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중
지난 7월 6일, 그 뜨거운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으며 4.3 투어를 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한모살> 터를 찾았다. 한(큰) 모살(모래), 즉 넓은 모래사장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표선해수욕장 백사장 일대로, 4.3 사건 당시 표선면, 남원면 일대 주민 200여 명이 희생된 일상적인 학살터였다고 한다. 어? 그런데 석 달 전, 남편 따라 답사를 갔다가 인상 깊어 사진까지 찍어 두었던 표지판이 사라진 걸 알아차렸다. <제주 4.3 유적지 (표선 한모살)>이라는 표지판이 분명 여기 있었는데? 일행들이 그럴 리가 있겠냐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길래, 마침 저장해 둔 사진을 보여 주었다. 바로 앞에 자리한 체육관 주차장 공사를 하며 표지판을 없애 버린 게 분명해. 우리는 씩씩거렸다. 그때, 일행이던 강 선배가 전화기를 들더니 내 사진을 보내달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알고 있던 기자에게 사진과 함께 ‘시민 제보’를 했다.
7월 8일, 한라일보에 <‘작별하지 않는다’ 표선 한모살 4.3 학살터 표지석 어디로>라는 기사가 바로 올라왔다. ‘제주다크투어’ 등 여러 곳에서도 현장을 방문하고, 방치되고 훼손된 유적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10월 10일에 ‘제주다크투어’ SNS를 통해 <표선 한모살 4.3 표석 새로이 생겨>난 것을 알게 되었다. 신문 기사와 단체들의 항의에 지자체에서 급하게 조성한 감은 있으나, 예전보다 더 안전하게 추모할 공간이 생겼다는 긍정적인 평이었다.
어김없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남편과 나는 기분 좋은 건배를 했다. 7월 6일, 그 현장에서 같이 씩씩거리던 우리가 뭔가를 해 낸 것 같은 우쭐거림이랄까. 중학생 딸 앞에서 우리는 광장에 앉은, 까불이 중학생들마냥 신나서 떠들어댔다. 훼손 사실을 발견하고서도 그냥 한숨 쉬고, 행정 당국의 무심함에 분통만 터트리며 지나칠 뻔했는데, 강 선배 덕분에 알릴 수 있었고, 각 단체들의 시정 요구가 더해져 개선된 거야. 그래. 세상은 이렇게 바꿔 나갈 수 있는 거야. 그치? 맞아 맞아.
요즘 또 내가 접한 기분 좋은 소식 중에는 <청소년 책 사줄게 프로젝트>가 있다. 청주의 한 독립서점에서 시작한 운동(?)으로, 어른이 책값을 미리 결제해 놓으면 청소년이 서점을 찾아가 자신이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직접 골라 선물 받는 방식이다. 요즘 전국의 동네서점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익명의 어른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지갑을 여는 마음과 청소년이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 세대 간의 연대의 꿈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현장이다.
몇 주 전, 아이와의 대회가 떠오른다. 엄마, 도덕 수업 시간에 인터넷 자료 조사를 하는데
'북한 주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글이 나오니까 글쎄, 짝꿍이 눈이 똥그래져서는 정말 북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안 나오냐고 나한테 묻더라. 에휴, 책 좀 읽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어. 그 말을 듣고 요즘 아이들의 빈약한 문해력과 독서량이 걱정된다며 내가 한탄만 할 때, 누군가는 따스한 시선으로 청소년들의 처지와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돌봄 강연에서 만난, 한 사회 복지사 선생님은 <감성과 감수성>의 차이를 나에게 명확히 해 주셨다. 우리가 어떤 문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아, 어쩌냐? 안타깝네’ 로 끝나면 ‘감성’에 그치는 것이고, 그걸 알리고 바꿀 것을 요구하는 행동까지 나아간다면 ‘감수성’이라 하셨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단어가 된 ‘인권 감수성’이라 말에는 이렇듯 관심과 알아차림을 넘어선, 행동까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희망은 품고 살면서도, 그 출발점이 바로 ‘나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자주 잊게 된다. 내 삶의 변화든, 세상을 향한 변화의 요구이든 따뜻한 관심의 불을 켜 두는 것이 첫걸음일 테다. 그러다가 섬세한 알아차림의 사이렌이 울릴 때, 올바름을 견지한 행동을 놓치지 않는다면 변화는 가능하다는 걸 요즘 또다시 배우는 계기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뭔가 바꾸어보자,
‘나부터라도’ 진짜 다르게 살겠다,
대안적인 삶이나 세상은 가능하다, 고 꿈꾸기 시작하면
희망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 강수돌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