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까는 미안!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by 평온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중


아빠는 건축 일을 하시는 분이셨다. 어린 꼬마들이었던 우리는 종종 아빠가 시멘트와 모래, 자갈을 섞어 놓으면 양동이로 물을 날라와 붓기도 하고, 물뿌리개로 졸졸 물을 뿌리고 물길을 만들며 놀았다. 그걸 삽으로 떠 벽을 만들고 바닥을 고르는 아빠가 멋졌다. 학교 교실일 때도 있었고, 주택일 때도 있었고, 롤러 스케이트장일 때도 있었다. (그때는 아빠 덕에 롤러스케이트를 무료로 실컷 타러 다녔다.) 자로 치수를 재고 연필로 수첩에 적은 후, 연필을 귀에 척 꽂은 아빠를 따라 하며 우리 자매들은 깔깔거리며 자랐다.

기초 공사를 할 때마다 저렇게 작은 터에 방 2개, 마루, 부엌을 모두 앉힐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다 만들어진 집을 보면 그 공간들이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아 신통방통한 기분이었다. 가끔 아빠가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공사 현장을 돌 때면 다섯 남매 중 특별히 나만 예뻐하는 것 같아 신났다. 간혹 바람이 세고 쌀쌀할 때도 있었겠지만, 아직도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누볐던 그 가로수길이 선명하다.

아빠는 남의 집 건축도 맡아하셨지만 새집을 지어, 파는 일도 하셨다. 그 완공과 매매 사이에 우리가 들어가 살던 집이 있었다. 아마도 생각보다 빨리 팔리지 않아 그랬던 걸까? 우리는 거실을 중심으로 하는 커다란 공간은 비워두고, 집주인이라면 세를 줄 것 같은 구석진 방에 모여 지냈다. 우리 집이었으되, 우리 집이 아닌 공간, 누군가를 위해 비워둔 공간에 우리는 장난으로도 들어가지 않는 순한 아이들이었다.

그 당시, 아빠는 상당한 건축비와 빚에 대한 압박 때문인지 술을 많이 드셨다. 내 기억에 아직도 선명한 그날, 중학교 3학년 9월 1일의 아침,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는 아침이라 일찌감치 모여 앉아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전날도 엄청 술을 마시고 누워있던 아빠가 옆에서 휴지통에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럽다며 짜증을 내고 밥숟가락을 놓고 등교했다.

그날 모의고사를 보았고, 만족할 만한 점수에 기분 좋아하던 그때, 선생님이 부르셨다. 아빠가 많이 아프셨냐고, 빨리 집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풍경이 기억나되, 어떤 영화의 장면들처럼 떠 오를 뿐, 나의 마음에 대해선 떠 오르지 않는다.

허둥지둥 마을 어귀 좁은 골목을 들어서다 이모를 만났고, 아빠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단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시간을 놓치고, 아빠를 놓쳤다.

시간을 거슬러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돌아간다고 그 상황에서 기분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았겠지. 나도 한 까칠하는 중3 여자아이였으니까. 그래도 조금 후 사과는 하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도 해 보지 못했던 그날 아침의 이야기, 나 아닌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풍경이지만 나는 이제껏 그 시간을 놓지 못한다. 이제라도 정중히 아빠 앞에, 그날의 아빠보다 스무 살이나 나이 들어버린 나는 다소곳이 앉아 말하고 싶다.
"아빠, 아까는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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