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있어야 햇살과 바람이...

그림책 <나는 ( ) 사람이에요>

by 평온

Episode 1.

엄마, 인사해. 내 남자친구야.”

저녁 준비를 하다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중2 딸아이 손에는 10센티 남짓의 헝겊 인형이 들려 있었다.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란다. (이름은 여러 번 물어보았으나 매번 까먹는다. 일본 이름이라) 초등 때부터 용돈을 가지고 서점을 들락거리며 <하이큐> 시리즈를 50권가량 사 모으더니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싶어서 뭐라 말을 못 잇다가 딱 한 마디 했다.

“니네 언니는 중2 때 조니 뎁을 미래의 남편이라고 소개하드라. 아빠랑 동갑이긴 해도, 그래도 사람을 소개하더니, 너는 만화 캐릭터를 남친이라고 소개하는구나.”


그 후 아이는 대놓고 남자 친구의 생일 파티를 하고 (세상에! 만화 캐릭터에게도 생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 갈 때면 데리고 가 명소마다 그 애의 사진을 남긴다. 손이 모자랄 때는 내가 그 인형을 곱게 들어주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사춘기 딸이 남자 친구를 소개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어쩌면 남자사람친구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내 맘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Episode 2.

“주말 저녁마다 영화 한 편을 같이 보는 건 어떨까?”

엄마랑 나랑 취향이 다른데, 굳이 같이 봐야 해?”

“서로 맞춰 가면서 보면 안 되니?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니?”

간장게장에 환장하는 둘째와 함께, 시험도 끝났고 다른 일정도 없는 한가한 토요일 오후, 간장게장 정식을 먹으러 갔다. 볕 좋은 주말에 터벅터벅 걸으며 피로와 짜증에 젖어있던 나를 바짝 잘 말리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원기 회복도 했으니, 밤에 가족이 오순도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알콩달콩 영화 한 편 때리기. ‘내가 꿈꾸는 주말의 한 장면’을 기분 좋게 딸에게 제안했다가 대차게 차였다.


결국 그날 밤, 우리 집은 나 혼자 영화 한 편 보고, 몇 년째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을 주말 9시 40분에 반드시 시청하시는 따님에게 시간 맞춰 자리를 양보해 드렸다. 그 시각, 내 반려 인간은 안방 침대에서 뉴스를 수면 음악으로 깔고 자고 있었다.


<나는 ( )* 사람이에요>는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이었다. 펼쳐 보기도 전에 제목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독서 토론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나는 00한 사람인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좀 불편함을 느낀다. 한 템포 멈칫하게 되는 기분이랄까? 자기 자신을 한 마디로 ‘~한 사람’으로 ‘규정’ 짓는다는 것이 나처럼 어설프고 두루뭉술한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다음에 오늘과 다른 나를 발견하면 저 이는 오늘 자신의 말을 기억이나 할까 하는 의문도 품는다. 그런데 그 일 면에는 부러움의 감정도 인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자기를 알고 있고,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거 아닐까 하는, 나도 그러고 싶다는 부러움이다. 그래서 펼쳐 보는 데 꽤 시간이 걸린 그림책이다.


나는 ‘취향’이랄 게 별로 없다. 우리 애들처럼 딱히 어떤 배우나 만화에 꽂혀 본 적도 없고, 친구 A처럼 조용필 팬클럽 활동을 고등학교 때부터 수십 년간 지속한다거나, ‘손석구가 나오는 건 다 본다’라는 친구 B의 덕후 생활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 써 보기, 내가 싫어하는 △△ 써보기’ 이런 질문이 힘들다.


60년대 끄트머리에 제주 토박이 K 장녀로 태어나, ‘콩쥐 서사’를 가지고 자란 나. 30대의 아이에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게 된 엄마에게 큰 위로의 존재가 되고 싶었고, ‘잘하고 있다’는 인정도 받고 싶었다. 그게 내 어린 날의 동력이었다. 이야기 속 콩쥐는 개구리, 참새, 황소가 도와주는 걸 고맙게 받기라도 했지, 나는 누가 도와주는 게 불편했다. 내 손으로 시작하고 내 손으로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야 나 혼자 칭찬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넷이나 되는 동생들을 어르고 달래며 같이 하는 다정함도 장착하지 못했다. 참 답이 없는 아이였다.


앞에 닥친 집안일을 하느라 주위를 살필 새가 없었고, 좋지 않은 머리로 공부에서 성과를 내려니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공부=길=성공=행복>이라는 프레임에 맞춰 살아왔을 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애정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내 삶의 그림을 그려볼 ‘틈’이 없었다.


그림책은 그렇게 존재는 빈약하면서, 겉보기만 단단해 보이는 내가 드디어 만나게 된 ‘틈’이다. 콘크리트 같던 고집불통의 내면에 틈이 생기는 중이다. 그림책을 통해 나에게 ‘틈’을 주지 않은 건 세상도, 가족도 아닌 나였음을 알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 A도, B도 나만큼이나 가난하고 불우한 시절을 보냈음에도 자신의 취향을 찾고, 흥을 발산하며 살았던 걸 보면 내 기질과 성정이 원체 건조하고 삭막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경주마의 좌우 시야를 차단해 앞만 보고 달리도록 하는 ‘차안대’처럼, 나를 앞만 보고 달리도록 계속 박차를 가한 건 나 스스로의 경쟁심과 인정욕구였다.

주저하던 손에 책을 쥐어 펼쳤다. <나는 ( ) 사람이에요>의 원제는 <I AM HUMAN>이다. 원제 그대로였다면 <나는 사람이에요>. 괄호가 빠졌겠다. 원제를 봤다면 내가 이 책을 더 일찍 펼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같이 세상에 태어난 '나'
수십 억 인구 중에 오직 하나 '나'
나는 사람이에요.
끊임없이 배우고, 꿈을 꾸고,
꿈을 이룬 나를 상상하는 ‘나’
(중략)
이토록 다양한 내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나를 꿈꾸며
언제까지나 노력할 거예요.


그림책을 읽으며 만들어진 그 틈으로 햇살과 바람이 나를 통과한다. 날아다니던 씨앗이 그 틈에 살포시 앉아 싹을 틔우고 자라며 내 삶을 피어나게 한다. 주저하던 일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벌여 나가고 있다. 작년 말에는 친구 A, B와 함께 서울까지 조용필 콘서트를 보러 다녀오기도 했다. 드라마도 잘 안 보던 내가 드라마에 흠뻑 빠져 울고 웃는다. 그리고는 지난주 드디어 자랑스럽게 딸에게 말했다. “엄마도 최고로 좋아하는 배우가 생겼어.”


요즘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게 최대 관심사다. 나이 50이 넘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니 기가 찰 노릇이지만 나에게는 꽤 커다란 고민이다. 그러다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 같은 어른은 어떨까 또 꿈을 꿔본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림책이 주는 '틈'과 햇살과 바람을 잘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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