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뜬금없는 인사에 놀라셨죠? 제가 낯도 많이 가리고, 다정한 성격도 못 돼서 사람에게 잘 다가가지를 못하는데, 가끔은 마시멜로 같은 말랑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나마 전하고 싶어 집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전 아이 아침으로 김밥을 쌌습니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양푼에 푸고 소금, 깨, 참기름으로 양념을 했죠. 계란 3알을 부치고, 어묵을 볶고, 김치와 꼬들단무지는 잘게 썰고, 오이는 기다랗게 준비했어요. 예전에는 시간에 쫓겨, 또는 생각 없이 빨리빨리 해치우기 바빴는데, 요즘은 펼쳐진 김 위에 밥을 얹는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느릿느릿, 천천히’를 되뇝니다. 차분히 올린 밥 위에 준비한 재료들을 찬찬히 놓고 둘둘 말며 나의 오늘 하루도 이렇게 김밥처럼 단단하게, 정성을 다해 말아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썰지도 않은 통김밥을 (아이의 주문 사항) 야무지게 먹으며 엄지를 척 세우는 딸아이의 모습도 제 기쁨입니다. ‘오늘도 잘 지내’라며 손바닥을 짝 부딪치는 매일의 등교 인사까지, 기분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저는 딸 둘과 함께 대만 여행을 다녀왔어요. 둘째 날엔가, <타이베이 101 빌딩>에 갔습니다. 초속 60 킬로미터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89층에서 전망을 보고, 일 년에 200회 이상의 지진과 태풍을 견뎌낸다는, 이 빌딩의 무게 중심 <댐버>를 보았어요. 무게 660 톤, 지름 5.5 미터의 커다랗고 노란 쇠공 모양이었어요. 그 커다란 중심을 보며 나의 중심 추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3년 전, 제 삶에도 강도 높은 지진 해일이 덮친 적이 있었거든요. 솔직히 많이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나를 잡아 준 중심 추는 무엇이었을까, 댐버를 보고 있으니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일상의 성실한 반복!> 그것이 저의 중심추였던 것 같아요. 해가 동쪽 하늘 위로 빠꼼 올라올 때 같이 일어나, 해가 하늘길을 돌며 세상 만물을 어루만지는 동안 나도 빨빨거리며 하루의 일과를 해 내고, 해가 수평선 아래로 넘어갈 때 저도 집으로 들어가 몸을 누이는, 지겹고도 구차해 보이던 일상의 단정한 반복이 사실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온 중심추가 아닐까. 101 빌딩의 88층에 서서 댐버를 보며, 어질어질함과 아찔함 사이에서 제 중심추를 발견했답니다. 선생님에게도 어김없이 태풍과 지진이 찾아왔던 날들이 있었을 텐데, 선생님을 붙들어준 중심 추는 무엇이었을지 듣고 싶네요.
우스운 일도 있었어요. 고궁박물관에 옛날 중국의 미인상이 160센티의 키에 몸무게 80킬로로 추정된다면서 가리킨 조각상을 보니 딱 내 모습인 거예요. 아! 내가 저 시기에 태어났다면 꽃들이 민망해 시들어버리고, 물고기들이 부끄러워 죽어 버렸다는, 나라를 망친 경국지색의 여인으로 살았겠구나. (그 조각상의 주인공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큰일 날 뻔했네, 휴~~. 제 말에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웃더군요.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에 기준을 세운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요. 내 몸일진대 내 몸에 허락도 없이 점수 매기는 타인들의 폭력적인 시선이 가소로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 와서는 요즘 물리치료를 다니고 있어요. 다리가 자신을 귀히 여겨 달라고 줄기차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세 친구가 억새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때까지는 괜찮아졌으면 좋겠어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 몸의 명령을 따라야겠지요. 안타깝게도 몸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제1 순위의 항목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유명 빵집의 노동자였던 26 세의 청년이 과로사로 숨진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 사회가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말로 청년들을 혹사시키고, 그들의 꿈을 볼모로 몸을 돌보는 것 '따위'는 사치라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은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요?
오늘 우연히 ‘뫔’이란 단어를 발견했어요. 내가 내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벗어나 하나로 융합하는 개념인 ‘뫔’, 정말 멋진 언어의 ‘발명’이 반가웠습니다. 매일매일 쓰면서 널리 전파시켜야겠어요. 선생님, 우리가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서로의 이야기를 다정히 주고받았던 이 시간이 오래 기억날 듯합니다. 우리, 언젠가 또 어느 강의실에서 만날 거 같지 않나요? 배움의 길에서 이렇게 계속 연결되기를 바라며, 언제나 ‘뫔’을 살피는 나날 보내세요. 제 수다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강의 때 뵐게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