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가 없어 기다림이 1시간, 2시간 흘러도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평온

91년, 남자친구 W가 학교를 먼저 졸업했다. 학교 학생회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사람이라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속세로 내려가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아직 삐삐도 없던 가난한 청년들이었다. 이제 우리 어떻게 만나지? 만날 길이 요원하다. W는 민주청년회 상근을 하게 되어 사무실로 전화 통화는 가능했지만, 워낙 바빴고, 파견 회의도 많은 시절이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해. 민주화를 외치다 우리의 연애가 박살 나겠어. 고심의 결과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그 커피숍에서 만나는 거다. 잊지 마!!


맨날 청바지에 아무 거나 걸치고 거울 한 번 안 보고 다니다가, 월요일 아침이면 직장에 다녀서 어여쁜 옷이 많던 동생을 어르고 달래고, 안되면 협박하며 옷을 얻어 입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건데, 그에게 고운 님의 얼굴로 기억되고 싶었겠지. 하지만 웬걸, 30분이 지나도 안 온다. 청년회는 저녁에 직장일을 마친 회원들이 모이는 곳이라 웬만하면 전화하지 않으려 했다. 내일 있을 스터디를 위해 책을 읽다 보면 오겠지. 1시간이 지났다. 안 되겠다. 커피숍 전화기 옆 작은 그릇에 100원인지, 200원인지를 놓고 (아! 기억도 안 날 만큼 세월이 흘렀네.) 전화기 좀 쓸게요, 눈빛을 보내며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저 편에 그는 없었다. 다른 단체에 파견회의를 나갔단다. 잊은 걸까 싶어 섭섭하지만, 워낙 시국이 급박한 시절이었던 터라 화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연애할 때는 이해의 폭이 하해만큼 넓지 않은가, 다 이해한다. 그러니 오기만 해라. 내가 너의 고단함을 달큰한 소주와 근고기로 채워주리라 생각하며, 혹시나 하고 또 자리에 앉는다. 2시간이 지났다. 이제 포기하고 일어나련다. 다음 주까지 그를 보기는 힘들겠군. 가끔은 늦게라도 커피숍으로 나를 찾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더 늦어질 예정이라 못 오겠다는 전화이기도 했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전화이기도 했다.


- 다리가 아파서 루모 데리러 못 가겠어. 보리네 들러서 루모 데리고 산책까지 하고 와주길.

W에게 카톡을 보냈다. 한참 동안 보지 않는다. 바쁜가? 두 시간쯤 흐르고야 문자 옆 1 숫자가 사라졌다. 이제 읽었구나. 1분, 2분, 3분. 기다려도 답이 없다. 왜 답이 없는 거야? 읽고 무시하나 싶어 기분 나쁘다가 무슨 큰일이 생겼나 걱정하다가 나 혼자 감정의 파도를 타고 있는데, 알았다, 한 단어로 끝이다. 흥! 못마땅하다. 전화기 없던 시절, 기약 없이 2시간, 3시간, 너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설레며 기다리던 마음은 이제 1분도 참아내지 못한다. 연인이었던 관계가 '가족끼리 왜 이래'로 변해버린 30여 년의 시간차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혹은 삶의 대부분이 그렇게 변해버린 것 같다.


얼굴에서 음성으로, 음성에서 글자로, 당신은 축소 조정돼왔다. 그러면서 당신은 쉬워졌다. 이 변화의 와중에 당신이 점점 뭔가를 잃어왔기 때문이다. 아,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하면서 느끼게 되는 바로 그것, 그 '다름'말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353


친구 오여사는 요즘 유튜브로 영화 요약 영상을 즐겨 본다고 한다. 2시간짜리 영화를 10~20분 내외로 요약해 주어서 보는 재미가 있단다. 다이제스트 판인 거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원작을 못 보겠단다. 배우의 느리고 긴 호흡을 같이 따라가기가 힘들어지는 거다. 우리야 이제 꽤 나이가 들었으니 그 행간을 읽을 수 있다고 좀 뻐겨본다 쳐도 이 세상을 이제 막 밟아가는 작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좀 걱정이기도 하다. 어렵고 분량 많은 책은 챗GPT가 요약해 주고, 삶의 풍요를 안겨줄 무수한 영화와 예술은 알아서 압축처리하고 쉬운 말로 해설까지 해 주는 시대. 문학과 영화와 예술의 임무가 무엇인지, 그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게 아니라면 제발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접하더라도 너의 눈과 귀와 뇌를 거치며 느릿느릿 통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마저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되고 말겠구나.


MBC ‘놀면 뭐 하니?’의 ‘80s 서울가요제’는 80년대 곡으로만 참가하는 가요제였다. 80년대 우리 가요가 주옥같은 가사로 깊은 서정을 담을 수 있었던 건, 혹 기다리며 설렜던 쉼표, 만나지 못해 울고 싶었던 느낌표 같은, 우리들 청춘의 문장부호 덕분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큰 의미 부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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