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지만, 성장통을 앓는 중입니다

홍지이 <여기 다 큰 교사가 울고 있어요 >

by 평온

십 대의 나는 서른 세 살이 되면 어른으로 ‘완성’ 되어 있을 거라는, 혹은 서른 셋에 죽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춘기를 지냈다. 그 당시 독실한 신자인 부모님에게서 유전자처럼 물려받은 모태 신앙으로, 거부감 없이 성당을 다니고 있던 터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서른 셋’이라는 나이는 나에게 어른의 숫자이자, 완성의 숫자로 각인된 것 같다. 그럼 내가 서른 셋이었을 때 뭐하고 있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 지금, 나는 어른이 되어 있는가? 삶이란 강물처럼 흐르는 것. 단계단계마다 문 門이라는 게 존재할 리 없지만, 나는 이제야 어른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걷기 시작한 것 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 아이를 들여다보며 가엾어 하고, 부모를 원망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술을 마시며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고서는 다음날 이불킥을 한 적도 여러 번이고, 그 무한반복을 언제나 경청해 주는 친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며 한 시절을 지냈다. 그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 내가 내 부모가 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되기 시작한 거 아니었을까? 내 안에 웅크린 내면아이를 부모에 대한 원망 없이 나 스스로 보듬고 보살필 때, 마법이 풀린 것처럼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을 시작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보살핀 나의 내면아이가, 지금 현실의 나와 일치할 때 정말 어른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의 몸이 커가며 무릎이, 발목이 아프듯이, 내 마음도 자라 어른이 되려면 성장통은 필수이다. 글을 쓰고 내 안의 우물을 들여다 보며 아파하는 시간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순간들이 모두 성장통이다. 아픔은 피할 수 없다. 잘 아프는 게 중요하다. 이번 한 번의 아픔이 내 생의 면역력을 키워줄 거고, 다음 또 한 번 아프고 나면, 훌쩍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이까짓 아픔, 견뎌보자 싶어진다.


난 누가 봐도 어른이 되었지만
글 초반에 잠시 떼어놓은
'좋은' 이란 수식어를 여전히 흠모해. ..
내가 선 어느 곳에서나
늘 나보다 더 능숙하고 기품있는 어른이 계실 거란 믿음이 있어.....
앞서간 자의 발자국을 따르고
그림자를 쫓으며 믿고 따를 진짜 어른을.
난 언제나 좋은 어른 수집가였어.
- 홍지이 <여기 다 큰 교사가 울고 있어요> 중



올 초였던가, <어른 김장하>를 눈물까지 흘리며 보고 나서 나에게는 ‘좋은 어른’이라는 탐구과제가 생겼다. 다 커버린 지금에 와서, 진지하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며 지내고 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응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행사에 참여했다가 도서관친구들이라는 단체와 제주의 기특하고 작은 도서관의 후원회원이 되었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이라는 영화를 보고 와서는 뉴스타파의 후원 회원이 되었다. ’주면 그만‘인 김장하 어른처럼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이유는 나의 ’좋은 어른 되기‘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적은 돈, 작은 몸짓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치, 내가 추구하는 정의로움에 손을 보태며, ’응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 글을 쓰며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을 쓰신 김영옥 선생님을 내내 떠올렸다. 선생님과는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으로 만나,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귀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1학기 종강이라며 제주에 내려오시기도 하셨다. 칠십이 다 돼가는 나이에도 머무르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신다.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비인간, 지구 생태계와의 공생과 돌봄을 이야기하시는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닮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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