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다리아'의 세계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by 평온

‘다리아’는 내 가톨릭 세례명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종교 생활을 하지 않지만, 지금도 친정 식구들과 친척들은 나를 ‘다리아’라 부른다. 돌아가신 친가, 외가 조부모님들은 내 주민등록상 이름은 모르실 것이다. 집성촌 안에서 살며 만나는 모든 이들이 '다리아'라 부르던 어린 시절과 주민등록상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취학 후의 공적인 세계는 나에게는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두 세계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지배했던 건, '다리아'라 불리는 세계였다. 태어나는 것도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닌데, 태어나 보니 강제로 종교마저 주어진 삶이라니, 사춘기 고등학생에게는 가장 큰 불만 주제였다. 그건 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초등학생 어린 시절은 온통 착한 아이가 되는 게 삶의 목표였던 듯하다. 착한 삶을 살아 부모에게 칭찬받고 덤으로 죽어서 천당까지 갈 수 있다니 이보다 더 매혹적인 원 플러스 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동생이 넷이나 있는 맏이에게 착하게 산다는 건, 참으로 고된 과정이었다. 윽박지를 일도 있었을 거고, 나쁜 마음을 먹을 일도 많았겠지.

그럼 나는 조용히 마당 오른쪽 구석에 있던 화장실에 조용히 들어갔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세며 이제 화장실에서 나가면 착한 사람이 될 거야. 다짐하고 짠 밖으로 나갔다. 근데 그 착한 사람이란 게 나만의 다짐으로 되는 게 아니다 보니 화나고 미운 마음이 바로 들끓어 올랐다. 또 화장실로 직행. 하나, 둘, 셋... 아홉, 열!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강박이 되어 하루에도 대여섯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열 살 꼬맹이 다리아.

그런 나에게 열한 살 때 조그만 사건 하나가 벌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꽤나 극복하기 어렵고, 난처한 사건이었다. 나에게는 한 살 많은 이모가 있는데, 항상 같이 놀면서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그날도 무슨 일인가로 싸우다가 열두 살, 꼬마이모가 전화기를 들더니, 넌 나쁜 애니까 113에 전화해서 간첩으로 신고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더니 정말 113을 눌렀고, 전화벨 소리에 이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나자 우리 둘 다 화들짝 놀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지만 그날부터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그 시절, 간첩이란 우리에게는 공포의 단어였다.

소풍 날도, 운동회 날도 모의 간첩 잡기를 하고. 마을에 처음 보는 사람이 어슬렁거리면 일단 간첩으로 의심하라고 배우던 시대. 밤에 사이렌이 울리면 등화관제라 하여 집안에 불을 모두 끄고 온 가족이 한 방에 웅크려 해제 사이렌이 울릴 때까지 어둠을 견디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cctv가 있는 시대도 아니지만 어디선가 형사들이 내가 간첩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했다. 열한 살 맹꽁이 다리아.

그러다 보니 나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하느님에게 내가 지옥불이 아니라 천당으로 데려가도 될 착한 아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일과, 수사반장에 나오는 최불암 아저씨처럼 어디선가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을 형사들에게 내가 얼마나 건전하고 선량한 대한민국의 어린이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일로, 이중삼중 나를 검열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어 쓰는 시험에서 상을 받고, 성경을 꼼꼼히 읽어 퀴즈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는 일련의 과정들이 혹시 다 그런 검열의 과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두 개의 렌즈에 비칠 자기 모습을 그려보며 조심조심 살았을 꼬마 다리아가 우습고도 안쓰럽다. 그렇다고 마구마구 착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옥죄는 선에 대한 강박에 맞서 더 보란 듯이 위악을 부리기도 했던, 위선과 위악의 어디쯤에 서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첫 기억을 떠올리면, 기저귀를 하고 어기적 어기적 마루를 기어 다니고 있는 나, 그리고 마당에 서 있던 키 큰 해바라기들이 보인다. 발에 동상이 걸렸는지 양말 속에 콩알이 들어있고, 찰랑거리며 부딪히는 콩알의 감각을 느끼며 아빠에게 안겨 어디론가 가고 있는 두세 살 정도의 내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여섯 살쯤 엄마가 성당 가는 길에 사 준 빨간 에나멜 구두. 내 생의 최초의 기억들이 이렇게 예뻐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다. 강박과 동동거리던 기억만 다리아에게 가득했다면 얼마나 안쓰러울 뻔했는가.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50대 후반에 들어선 나는 오후에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전에 여기저기서 하는 강좌들에 참가한다. 이렇게나 빨빨거리며 배우러 다니고, 이 책 저 책 뒤져 읽는 것이 어떤 의미의 결핍일 거라고, 내적인 허기를 달래려 허겁지겁 뭐든 채우려나 보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몇 주 전, 집 옆 작은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한국미술사 강의를 듣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건 결핍이 아니라 호기심이구나. 세상을 더 알고 싶고,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좀 심하게 과장한다면 전 지구적 사랑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멈출 수 없지.

단 한 번의 삶, 어느 순간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의 운명이라면, 어떤 게 좋은 삶이고 죽음일까? 나는 오늘 하루의 삶이 그 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성장을 위해 배우는 하루를 만들었는가.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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