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씨앗을 심으며

by 연필 든 정원사

남편이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다.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허무함이 읽힌다.

친구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내 마음도 저릿하다.


며칠 전,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남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평소 건강에 아무런 문제없던 친구가 갑자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엊저녁까지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 그 이름이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연 사람의 목숨이 무엇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아득해진다. 한없이 질기고 단단한 것 같다가도 이토록 한순간에 허망하게 끊어지는 것. 한 사람의 생애가 하루아침에 접혀버린 현실 앞에서 나 역시 나 역시 멍하니 서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들어와 나는 한동안 창가를 서성였다. 멀리 보이는 저수지 위로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과 산의 경계가 흐려져 하나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안개가 밀려가며 다시 저수지의 풍경이 드러난다. 어쩜 우리 인생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저 안개 같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펼쳐 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책은 돛>이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마지막 강의 제목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들려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의 태도와 방향성을 다시 점검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오늘 우리가 전해 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사고, 심각한 질병 같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기쁨보다는 ‘눈물의 강’을 건너야 하는 순간이 많은 것이다.


작가는 그 고통의 순간에서 불평하고 저항하기보다는 그 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마음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우리는 결국 오래 보듬고, 천천히 삭히고, 그러다 조금씩 흘려보내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몸의 변화와 함께 유한한 삶의 시간에 대하여 자주 떠올리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아침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향한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목단 나무 앞에 섰다. 긴 겨울을 지나온 가지 끝에 여린 새순이 올라와 있었다. 이 나무는 이제는 옛사람이 되어버린 남편의 그 친구가 작년 봄에 들고 왔던 것이다. 사람은 떠났는데 나무는 남아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를 지키며 다시 잎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떠나는 일과 남아 있는 일, 사라지는 것과 다시 시작되는 것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은 아무래도 나 혼자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모자와 마스크까지 챙겨 밭으로 내려간다. 호미로 흙을 고르고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작은 씨앗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자리, 나는 말없이 그 위를 한 번 더 힘주어 토닥여 주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시간은 이렇게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