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추억
가는 봄비가 제대로 내리고 있다.
이른 봄의 귀환을 알리듯 밤새 유리창을 두드리던 봄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에 스며들어 흙을 말랑하게 풀어주고, 잠들어 있던 씨앗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건너편 산자락에는 뿌연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한겨울을 푸르게 버텨 온 사이프러스가 촉촉이 젖은 몸으로 3월의 아침을 열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차갑지 않은 빗방울이 보슬보슬 내린다. 우산을 받쳐 들고 봄비에 젖은 정원을 천천히 둘러본다. 군데군데 깔아 놓은 제주 화산석을 닮은 판석을 딛고 안쪽으로 들어가, 재작년 친정에서 얻어 온 장미나무 앞에 섰다.
아버지의 정원에서는 그 장미를 ‘월계장미’라 불렀다.
해마다 겹겹의 분홍 꽃잎으로 5월의 세상을 환히 열어 주던 꽃. 겨울을 건너온 마른 가지 끝에서 불그스름한 새순이 막 올라오고 있다. 나는 해마다 이 모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장미의 마른 가지에 돋아난 여린 새순을 발견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 장면 때문이다.
봄의 문턱에 서 있던, 아마 이맘때였을 것이다.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나, 셋이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떤 연유인지 그 시절 엄마의 모습은 내 기억에 없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변덕스러운 쌀쌀함이 얇은 옷 속으로 스며들던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몇 년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오는 기차를 탔다. 작은 소읍에 위치한 역에 내려, 우리를 내려주고 떠나버린 기찻길을 따라 옛집을 향해 걸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무거운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으셨다. 철없던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을 치며 따라갔다. 선로 위를 외줄 타듯 걷기도 하고, 돌을 집어 아직 황량한 논으로 던지기도 했다. 그날 우리의 발걸음은 아마 ‘귀향’이었을 것이다.
1970년대, 정부의 산업화 정책으로 도시에는 공장과 건설 현장이 급격히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 농토를 떠나 도시로 향했다. 그즈음 아버지도 변변치 않은 농토로는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해 도시행을 선택하셨던 것 같다. 그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결단이면서, 자식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우리 가족에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듯하다. 집안의 분위기는 대체로 침울했고, 아버지의 얼굴은 옛 시골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굳어 있었다.
그해 봄, 나는 그렇게 짧은 도시 생활을 접고 다시 시골 아이가 되었다. 전학 절차를 밟고, 그 당시 ‘국민학교’라 불리던 새로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산수국민학교’, 새로 다니게 될 학교의 이름이었다. 순간 이 학교 아이들은 국어보다 산수를 더 잘하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내가 3학년, 오빠는 5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였다.
구불구불한 논두렁과 밭두렁을 따라 이어진 흙길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다. 집에서 4km가 넘는 먼 길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학교는 야트막한 언덕 끝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교문으로 이어진 긴 화단 옆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라가던 길,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이 있었다. 딱딱한 나무껍질을 밀어 올리며 막 고개를 내민 장미의 새순이었다. 연한 초록빛 끝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새순이 짧게 전지 된 가지마다 일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아버지의 손을 놓고 그 새순을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곧 마주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을 잠시 미루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교실과 친구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 나와, 막 봄을 시작한 장미의 새순이 닮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이제 막 3학년이 된 아이였지만, 나는 이미 그 작은 장미의 새순에 나를 겹쳐 보고 있었다. 다시 아버지의 손을 잡았을 때, 두렵고 낯설기만 하던 학교가 이상하게도 덜 무섭게 느껴졌다. 어쩌면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한 학년에 두 반뿐인 작은 학교, 나는 3학년 1반에 배정되었다. 한 번 배정된 반이 졸업할 때까지 유지된다는 점이 신기했다. 사는 마을에 따라 반이 정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3학년 1반, 우리 반 아이들은 다정하고 친절했다.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물이 막 오르기 시작한 버드나무 둥치에 엎드려 숫자를 세는 술래를 피해 달아나는 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혹시 내가 잡힐까 봐 앞다투어 내 손을 잡고 함께 달아나 주었다. 도시에서 수많은 아이들 속에 묻혀 지내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환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봄날의 풍경은 장미의 붉은 새순과 버드나무의 연초록 물빛 속에 아직도 살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된 나는 그 시절의 봄을 떠올린다. 말랑해진 흙 사이로 미처 보지 못한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빗줄기가 한결 가늘어졌다.
나는 장미 가지의 여린 새순 앞에 서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다시 봄의 세계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한때는 떠나야 했고, 다시 돌아와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봄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다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