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해마다 새 도화지를 꺼낸다

-소풍한담의 봄 아침

by 연필 든 정원사

다시 언덕 아래 이웃집의 새벽닭이 울기 시작한다.

겨울 내내 들을 수 없던 닭 울음소리가 어쩐지 확실한 봄을 알리는 것 같다. 새벽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울음에는 정겨운 시골 마을의 정서가 담겨 있다.

그런데 닭들은 늘 거기 있었으면서 지난겨울 내내 왜 그토록 잠잠했던 것일까. 닭들도 봄이 반가워 이제야 자신의 임무를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둠에 잠겨 있던 창밖으로 빛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날이 밝아오는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아침 해가 일찍 떠오르니 하루가 길어진 것만 같다.

아직 황무지처럼 비어 있는 땅에 올해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식물을 배치해 꽃밭을 꾸며 볼까. 봄은 늘 이런 기대를 데려온다.


오늘은 화실로 그림 수업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그림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선다.

남편과 내가 은퇴 후 내려와 살고 있는 집은 도로가에 있다. 한때는 많은 차들로 분주하던 길이었다. 그러나 더 빠른 길을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곳에 곧게 뻗은 도로가 생기면서 이제는 조용한 옛 구도로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한적한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는 길, 어쩌다 한두 대의 차량만 지나갈 뿐 도로 위에는 봄 햇살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

그때 노란빛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나처럼 서두를 것 없는 걸음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밭둑으로 사라진다. 차창 안으로 고양이의 털처럼 노랗고 맑은 햇살이 스며든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봄이 머뭇거리며 영하의 기온을 만들지만, 해가 떠오르면 영락없는 봄이다.


석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밭둑을 지날 때였다. 매화나무 가지 끝마다 곧 터질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있다.

이성부 시인의 구절처럼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이제야 도착한 봄이 매화나무 가지를 흔들어 깨우는 것은 아닐까, 나 혼자 상상해 본다.

곧 팝콘처럼 수많은 꽃송이를 터뜨리고 향기까지 아낌없이 내어줄 매화나무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해마다 봄의 문턱에서 느끼는 것은 자연은 실패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다만 사물과 현상이 스스로의 리듬에 따라 흘러가는 차서(次序)가 있을 뿐이다.

우리 삶이 달랑 한 장의 도화지라면 자연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화지의 시간을 거느리고 있다.

올해도 자연은 어김없이 새로운 그림을 그릴 것이다. 반복되지만 결코 같은 그림은 아니다.


말갛게 내려앉은 햇살이 겨우내 굳어 있던 세상을 물렁하게 풀어헤친다. 연둣빛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 노란 꽃대를 올린 꽃다지, 별무리를 닮은 봄까치꽃까지.

주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마저 봄이 마련한 도화지 위에 조화롭게 담길 것이다.

봄꽃.png

자연의 풍경은 조급하지 않다. 제 몫의 시간을 통과해 이루어 낸 것들로 가득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퇴직하며 이곳에 내려와 지은 집의 당호를 **‘소풍한담’**이라 붙였다. 소풍길에 나선 것처럼 한가한 담소를 나누며 살아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들로 분주하다.

내가 받아 든 인생이라는 한 장의 도화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그동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까.

남의 도화지를 곁눈질하느라 거칠고 급한 터치로 흉내 내기에 바빴던 것은 아니었을까.

은퇴 후의 삶을 살며 비로소 잘 그린 그림의 여백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무엇을 더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시간을 살고 싶다. 오늘 배우러 가는 그림도 그렇다. 덧칠하는 그림이 아니라 비워내는 그림.

어느덧 화실 앞에 이르렀다. 도로가에 늘어선 오래된 벚나무 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 소식으로 시끄럽지만, 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연은 늘 제 차서를 따라 흐른다.

나도 그 흐름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화실 문을 연다.

오늘은 내 삶의 여백에

어떤 색을 얹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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