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지샌 밤

혼자 밤을 지내는 연습

by 연필 든 정원사

하얗게 지센 밤

남편이 수원으로 하룻밤 외출을 떠난 뒤, 외딴 시골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퇴직 후 이곳에 내려온 지도 벌써 4년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분명 ‘내 집’인 이곳에서 혼자 잠들지 못한다.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나 역시 늘 다른 선택을 했다. 딸이 살고 있는 동탄에 올라가거나, 시내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다. 결코 혼자 남아 있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언젠가는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이곳의 자리를 비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언제까지 남편이 외출할 때마다 나도 집을 비우는 방식으로 밤을 피하기만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아주 먼 훗날이기만을 바라면서도, 나는 천천히 ‘혼자 밤을 지내는 연습’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외출을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는 오후는 오히려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면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책을 뒤적이고, 창밖의 눈부신 햇살의 유혹에 이끌려 공연히 집 주변을 서성이며 해바라기를 했다. 짧은 오후는 금세 지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반짝이던 빛이 스러지고 어둠이 창밖에 내려앉자, 충만하던 자신감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짐을 챙겨 찜질방으로 가볼까 하는 약한 마음이 스쳤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대신 평소에 잘 보지 않는 TV를 켜고 소리를 한껏 높였다. 뉴스 앵커의 또박또박한 목소리, 채널을 돌리다 만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노래가 집 안을 채웠다. 사람 사는 소리 같아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때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혼자 잘 수 있겠어요? 무서우면 언제든 영상으로 통화해요."

"괜찮아. 엄마 혼자 잘 수 있어. 문만 잘 잠그면 되지."

큰소리를 쳤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혀 괜찮지 않았다. 무섭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차라리 일찍 잠들어버리자 싶어 소파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러나 환하게 켜 둔 불빛과 TV 소리 덕분에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잠시 뒤 남편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여보,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내려갈까?"

"걱정 마. 잘 자고 있을게."


이미 술을 마셨다는 걸 알기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 집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일이 이토록 대단한 일인가 싶어 딸과 남편의 전화를 떠올리며 혼자 웃음이 났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외딴섬에라도 남겨진 줄 알겠다.


하지만 막상 소파에 몸을 누이니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가라앉고, 머릿속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일어나 창가의 블라인드를 살짝 걷어 올렸다. 저 멀리 건너다 보이는 어느 집 창가에도 아직 불빛이 환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도 지금껏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묘하게 안심이 된다.


그때야 비로소 생각했다.

나는 지켜야 할 무엇이 그리 많기에 무서운 걸까. 흔히 눈이 큰 사람에게 겁이 많다고 하는데, 눈도 작은 나는 왜 그리 무서움을 타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내 두려움의 실체는 영화 속의 무서운 장면도, 흉악한 도둑같이 실재하는 무서운 존재도 아니었다. 바로 ‘홀로 있음’ 그 자체였다.


누군가의 숨소리, 작은 기척, 존재의 온기를 확인하지 못하는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TV를 켜거나, 라디오를 틀고, 불을 환하게 밝혀 두어야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그 두려움의 실체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내 안의 나도 모르는 어떤 상처가 있기에 그토록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삼립크림빵의 선명한 기억

찬찬히 내 마음속 풍경 하나를 들여다본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오래된 유년의 기억 한 토막이 올라온다. 어려운 집안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엄마는 생선 장사를 시작하셨다. 번듯한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새벽부터 생선을 떼어다가 함지박에 이고 다니며 우리 동네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달동네 이곳저곳에 팔아야 하는 고단한 시간이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일이라 다섯 살 무렵의 나를 허름한 단칸방에 떼어 놓고 몰래 나가시는 일이 일상이었다.


아마도 잠에서 깬 어린 나는 텅 빈 방 안의 고요와 적막 속에 놓였을 것이고, 혼자라는 생각에 자주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울음이 잦아들 무렵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의 손에는 어김없이 맛있는 크림빵이 들려 있었다.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갈색으로 잘 구워진 표면, 촘촘한 구멍 사이로 하얀 크림이 가득하던 삼십 원짜리 삼립 크림빵의 선명한 기억.


눈물 젖은 빵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입 베어 물던 그 달콤함은 엄마의 부재를 견디며 얻어낸 결핍의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크림빵.png

어젯밤 ‘홀로 있음’을 견디며 나는 그 오래된 시간을 떠올렸다.

그리운 엄마. 지나간 일들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처가 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한다. 어린 날의 그 기억은 분명 두려움인 동시에 결핍의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말해 주고 싶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자랐고, 혼자 울던 아이는 끝내 혼자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지나온 모든 순간 가운데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하얗게 지새운 어젯밤도, 단칸방에 남겨져 혼자 울음을 삼키던 그 아이의 시간도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조각이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창밖이 뿌옇게 밝아온다. 밤새 가슴을 누르던 묵직함도 새벽빛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진다.

스르르 잠이 올 것 같이 나른해진다.

어젯밤의 연습이 고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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