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까치꽃을 만난 오후

설렘이 먼저 피었다

by 연필 든 정원사

오랜만에 혼자만의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오후이다.

남편은 옛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을 위한 외출 준비에 한창이다. 퇴직 후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을 만나는 일이 꽤 설레는 모양인지 정성스레 면도를 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셔츠와 바지를 번갈아 바꾸어 가며 입고 나갈 옷을 열심히 고르는 얼굴에 간간히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막상 하룻밤 집을 비우려니 인적 드문 시골집에 나를 혼자 두고 외출하는 것이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늘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때로는 오늘처럼 각자만의 시간과 거리가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기에 내 마음은 오히려 살짝 홀가분하기도 하다.

남편을 배웅하며 따라나선 대문 밖에는 노란 햇살이 사방에 가득하다. 오후의 환한 햇살에 절로 눈이 가늘게 떠진다. 벌써부터 봄볕에 그을릴까를 염려하며 손차양을 만들어 얼굴을 가린 채로 집 주변을 둘러본다.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지붕에도, 도로가의 누르스름한 풀언덕 위에도 이른 봄 햇살이 눈부신 흰빛으로 내려앉아 있다. 검붉은 흙으로 비어 있는 정원과 아직 잎을 가지지 못한 헐벗은 나목들로 풍경은 여전히 겨울 그대로인데, 햇살만은 더 이상 겨울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은 언제나 햇살의 빛깔 때문이다. 햇빛은 계절마다 묘하게 다른 결을 지닌다. 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누워 차갑고 명료하게 비친다면, 지금의 햇살은 노르스름한 기운으로 포근함을 건넨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이 무렵의 햇살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대와 설렘을 품게 한다.


여름에나 쓰던 챙 넓은 모자를 꺼내 쓰고 본격적인 마을길 산책에 나선다. 볕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양지쪽의 풀들은 이미 푸른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갈수록 혹독해지는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라는 것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억척스럽고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푸른 물을 올리고 이른 꽃으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무심히 길섶을 바라보다가 작고 앙증맞은 꽃송이와 눈이 마주친다. 어쩌면 이 꽃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는지도 모르겠다.

길섶에서 만난 봄까치꽃

이 들풀의 이름은 ‘봄까치꽃’이다. 길가나 밭둑에서 흔히 마주치는 파란빛이 감도는 보랏빛 작은 꽃. 나태주 시인의 시어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쁨을 알게 되는 꽃이다. 아직 다른 꽃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른 봄, 우리 집에서는 가장 먼저 피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꽃말이 ‘기쁜 소식’이라니, 이 계절과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릴까. 하지만 고백하자면 그동안 나의 정원에서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잡초로 불리며 자주 뽑혀 나갔었기에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로 취급하며 지나쳐버렸을까? 김춘수 시인의 시어처럼 봄까치꽃은 오늘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내게 잡초가 아니라 꽃이 된 것이다. 이제 나의 정원에서 마주치는 이 들풀 또한 이름을 얻은 식구가 될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열고 허리를 숙여 그 모습을 담는다. 싱그러운 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작은 꽃송이들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 상상해 본다. 오늘 작고 여린 이 꽃을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가올 계절을 기다리게 되는 것. 그리고 올해도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다짐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미 기쁜 소식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마음이 이토록 말랑해지는 것을 보면.


계절은 밖에서 오는 듯하지만, 사실 봄은 늘 내 안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설렘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마음이 먼저 열리는 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고요한 흙 아래에서도 씨앗은 분명 제 시간을 향해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설렘을 품은 정원도 그렇게 서서히 열리고 있다.


행복은 지극히 사소하고 아주 작은 데서 찾아온다는 법정 스님의 글을 떠올린다. 그렇다. 행복은 선택인 것이다. 굳이 마음 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순간도 살아있어 맞이하는 지금 여기에서의 감동과 기쁨으로 붙잡는 것이다.


사실 나는 본격적인 봄이 오기 전, 이 시간이 좋다. 하루하루 따뜻함이 쌓여가고, 막 돋아난 수선화의 노란빛이 초록으로 여물어 가는 시간. 동그랗게 말린 튤립 잎이 하늘을 향해 천천히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 기대하는 그 무엇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미완의 시간이 좋다.


막상 기다리던 절정이 당도하면 봄은 늘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제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 시간임을 알지만, 그래도 오늘의 햇살만큼은 온전히 향유하고 싶다.

봄은 참 이상하다.

무심하고 덤덤하던 마음도 금세 무장해제시켜 버리니 말이다.


오늘처럼 햇살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날, 괜히 작은 꽃 하나에 걸음을 멈추게 되는 날.

아마도 봄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

세상이 먼저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오늘 같은 오후가 이미 봄 한가운데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마음이 그렇게 따뜻해서 봄이 시작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