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짚을 걷어낸 날
이른 점심을 먹고 난 뒤, 남편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새 일복으로 갈아입고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엎드려 일하는 남편의 등 뒤로 눈부신 햇살이 가득 쏟아진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지 않을까 괜히 마음이 쓰인다.
오늘은 나도 올봄 처음으로 정원일을 시작해 볼 작정이다. 햇볕을 막아 보겠다고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바르고, 마스크와 모자까지 단단히 챙겨 밖으로 나섰다. 시골살이에서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는 어느새 필수품이 되었다. 이렇게 꽁꽁 싸매어도 본격적인 정원일이 시작되면 봄볕에 얼굴이 그을려 지인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곤 하지만, 그 또한 이 계절이 남기는 훈장쯤으로 여기기로 한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어제와는 확연히 다르게 보드라운 봄기운이 가득하다. 우선 지난가을 튤립과 수선화 구근을 심고 보온을 위해 덮어 두었던 볏짚을 걷어 주기로 했다. 조금 이른 것은 아닐까 망설이면서도, 이 아이들에게도 오늘의 따스한 햇볕을 직접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볏짚을 걷어내니 아직 제대로 햇볕을 보지 못해 노란빛에 가까운 튤립 새싹들이 병아리의 부리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작고 어린것들은 사랑스럽고 신선하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땅속에서 매서운 겨울 추위를 잘 견뎌 내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계절의 변화를 감지해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대견하다.
두꺼운 볏짚 아래에 있던 탓에 새순의 연둣빛에는 아직 노란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오늘 한나절 햇살을 제대로 받고 나면 금세 제 빛을 찾아갈 것이다. 이제 보호막이 걷히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추위를 스스로 온전히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잘 이겨 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볏짚을 과감히 치워 낸다.
어제는 다가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때아닌 눈이 쏟아지더니 오늘은 유난히 봄볕이 좋다. 정원을 돌며 지난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른 잎을 치우고, 월동용 비닐도 벗겨 주었다. 문득 검붉은 흙 사이로 푸른 기운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봄 화단을 환히 밝히는 꽃양귀비였다. 매서운 겨울을 견뎌 낸 그 푸른 잎의 씩씩함이 대견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정원을 누비다 보니 작업복 위에는 “나 좀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 집요하게 달라붙은 풀씨가 가득하다. 억척같은 생의 열정을 가르쳐 주려는 녀석들인 것 같아 풀씨를 떼어 내면서 웃음이 난다. 모자를 쓴 머리에도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았지만,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한 것만 같아 오히려 마음이 상쾌하다.
정원 곳곳에 심긴 꽃과 나무에 거름을 주느라 분주한 남편과 가끔씩 마주친다. 봄날의 느슨한 햇살이 골고루 내려앉아 있는 정원을 오가며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눈빛과 표정으로 봄날의 여유와 노동의 즐거움을 서로 주고받는 시간이다.
은퇴 후 이렇게 시골살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남편과 생각의 결이 서로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 모두 시골에서 자랐지만 실제 농사일과는 거리가 있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농사일은 서투르기 짝이 없고 시행착오를 빚는 일이 일상이지만, 해를 더할수록 조금씩 손에 익어 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직장에 매여 시간과 노동력을 저당 잡힌 채 살아왔다.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해내는 것이 참으로 고단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시간 역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감내해야 했던 소중하고 필요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의미 없거나 중요하지 않았던 때는 한순간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처럼 내가 좋아서 하는 자발적인 노동을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문득 5년 후, 10년 후의 우리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불고하고 여러 번 다시 돌려본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일본의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와 그의 아내 츠바타 히데코 부부의 일상을 담은 <인생후르츠>라는 영화다. 영화 속의 두 사람은 직접 설계한 소박한 집과 정원에서 씨앗을 뿌리고 거두며 50여 년의 세월을 살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멈춤 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힘을 보여 주는 이야기였다.
함께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며 엎드려 풀을 뽑는 두 사람의 등에 따뜻하게 내려앉던 햇살과 새소리가 평화롭게 들리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속도와 효율’이라는 가치가 최고인 양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의 시간과, 천천히 공들여 사는 삶이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만든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깊이 남았던 것 중의 하나는 서로를 향한 깊은 배려와 존중이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자신들의 힘으로 밭을 일구고 손수 식사를 준비하며 누구의 보살핌에도 기대지 않는 단단한 삶. 그들의 일상은 내가 꿈꾸는 노후의 한 장면이었기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다시 씨앗을 뿌리고 보살피는 일이 시작되는 계절의 문턱에 이르렀다. 이후로는 잘 자라도록 가꾸고 보살피며 때에 맞추어 수확을 기다리는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하루가 쌓이고, 계절이 지나고, 우리 부부도 함께 익어 갈 것이다
.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노동이 있는 하루.
오늘도 정원을 돌아보며 다짐한다. 빠르게 사는 대신 깊게 살아가자고.
‘천천히 공들여 사는 삶’은 그동안 얼마나 꿈꾸었던 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