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아침
추위 끝에서 만난 기다림
좋다, 좋다, 정말 좋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이 거실에서 밝아오는 창밖의 아침 풍경을 보며 건네는 인사말이다. 조금만 더 이어지면 ‘좋다, 좋다’를 연발하는 어느 여행사의 광고를 연상시키는 노래가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한때는 일요일이 끝나가는 저녁부터, 다시 시작될 월요일에 대한 부담으로 가슴이 턱 막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그토록 애를 쓰며 달려갈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정년 백수(?)의 시간을 살고 있다. 날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하건만,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장작난로 안에 마른 장작을 집어넣으며 연신 “좋다, 좋다”를 되풀이한다.
“오늘 아침은 또 무엇이 그렇게 좋으실까?”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오히려 선물처럼 느껴져서.”
다소 싱거운 남편의 대답을 들으며, 얼마 전 시 낭송 수업에서 외웠던 시 한 편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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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렇게 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눈이 보인다
귀가 들린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고맙다!
인생은 아름다워
— 쥘 로나르,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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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매일 아침 눈이 뜨이고 귀가 들리는 것,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 이렇게 살아 있는 오늘은 그 어떤 이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 아니겠는가. ‘당연히’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마음을 열면, 행복은 가만히 일상 속에 머물러 있다.
2월인데도 며칠째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겨울 내내 포근함이 계속될 때부터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리라는 짐작은 했었다. 마치
“너희들 어디까지 추위를 견딜 수 있니?”
라고 시험이라도 하듯, ‘삼한사온’이라는 계절의 상도덕(?)도 무시한 채 제 마음대로 날씨를 죄었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잠시 숨 고를 틈도 없이 연일 매섭게 몰아치는 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새 묘하게 달라진 기운을 품은 햇살은 창밖 소나무 가지 위에 말갛게 내려앉아 봄이 멀지 않았다고 소리 없이 응원하고 있다.
본격적인 정원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계절은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따뜻한 거실에 들어앉아 봄을 기대하는 나 이상으로, 차가운 땅속에서 다가올 봄을 향해 웅크리고 있을 구근과 씨앗들의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남편이 던져 넣은 장작이 활활 타오르며 따뜻한 열감이 퍼져 간다. 장작난로 옆에 미련된 식탁에 앉아 책을 펼친다. 한동안 ‘1년에 몇 권 읽기’라는 다독의 강박을 놓지 못했다. 미처 소화하지 못한 책들을 서둘러 덮고 또 다른 책으로 넘어가며 목표한 독서량은 채웠지만, 정작 무엇이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독에 대한 집착과 안달을 겨우 내려놓으며 선택한 독서 방법이 ‘읽은 책 다시 읽기’다.
오늘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심심과 열심』, 김신회 작가의 글이다. 제목 아래에는 ‘나를 지키는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퇴직 후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쓰기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하여 사두었던 책들 중 하나다.
책장을 넘기니 분명 읽었던 책인데도 처음 만나는 책처럼 모든 문장이 새롭다. 하긴 방금 전 올려놓은 요리 냄비도 잊어버리고 태워 먹기 일상인 나이를 살고 있으니, 책의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는 일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작가는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생각들을 자기만의 언어로 질서 있게 풀어낸다. 내가 일상을 살아가며 머릿속에 늘 맴돌기만 하던 생각들이 그의 문장 속에서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내 안에 떠오르는 상념들이 어렴풋하게 떠돌 뿐 구체화되지 못하는 갈증을 달고 사는 나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이야기 한 편을 제대로 엮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옅은 희망이 고개를 든다.
글을 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체력’이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얼른 공감이 되는 말이다. 나처럼 중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인도 아닌 어정쩡한 요즘의 나이를 대체할 단어를 떠올리다가 '시니어'라는 말을 차용해 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니어'로서의 시간을 살다 보니 무엇보다 체력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체력이 바닥나면 글을 쓰기는커녕 기본적인 삶의 의지마저 스러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몇 자를 옮겨 적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고 많이 쓰는 사람.”
— 김신회, 『심심과 열심』
‘글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오늘은 끈기 있게 앉아 무엇이든 조금은 끄적여 볼 생각이다. 물론 몇 줄 쓰다 보면 이내 생각이 바닥나고,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나의 뇌는 어김없이 달콤한 핑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음에 쓰지 뭐.’
그 유혹이 얼마나 집요한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번에는, 그 말에 쉽게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자주 미루어 왔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커피포트에서 김이 오르고, 난로의 불길은 여전히 조용히 타오른다. 어느 사이, 창밖 소나무 가지 위로 내려앉은 햇살도 조금 더 환해진 것 같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아주 조금만 더 버텨 볼 생각이라고 스스로에게 단호한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기다림의 계절이란 봄을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연필을 다시 쥔다.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이 내 안에 조용히 찾아오도록 기다려 볼 작정이다.
아, 좋아하는 음악과 맛있는 커피 한 모금, 그리고 기다림이 있어 행복한 아침이다.